둥글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요?
‘동그라미야,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주신 뜻대로 늘 둥글게 살아야 한다. 모가 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생쥐 동그라미는 목 부분에 하얀 테를 두르고 세상에 태어났어요. 귀한 손자가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할아버지는 ‘동그라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요. 목둘레의 하얀 테가 더 커지고 선명해졌을 무렵, 동그라미의 마음속에는 선명해진 하얀 테만큼이나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자리를 잡습니다.
‘둥글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빈자리 속에서, 그 질문에 대하여 똑 떨어지는 답을 얻고 싶다는 동그라미의 갈망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동그라미는 큰 결심을 하고 엄마 아빠에게 선언하지요. 둥글게 사는 법을 찾아 떠나겠다고요.
“아빠, 엄마. 제가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저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둥글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꼭 알고 싶어요.”_본문 16쪽
길 위의 소나무와 별꽃에게 묻다
동그라미는 아빠, 엄마의 걱정과 눈물, 그리고 격려와 응원 속에 용기를 내어 여행을 떠납니다. 길 위에서 어떤 것들을 마주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지요. 생각보다 지루하고 힘든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질 무렵, 잠시 쉬어 가기로 마음먹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엄마가 싸 주신 주먹밥을 오물거리는 동그라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옵니다. 소나무 아저씨였지요. 동그라미는 나선 길 위에서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혹시 아시나요? 세상을 둥글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지만 소나무 아저씨가 동그라미에게 건넨 답은, 왜인지 동그라미의 마음속 퍼즐 빈자리에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동그라미는,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나아가며 마주치는 다람쥐와 개미, 별꽃과 바람에게 같은 질문을 건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강물 할머니를 찾아가라는 조언을 듣지요. 동그라미는 마음속 빈자리에 꼭 들어맞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이든 살아 있지 않은 것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내 모습을 보며 평화와 기쁨을 얻기를 바라며 나는 살고 있단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둥글게 사는 길이란다."
동그라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별처럼 초롱초롱하고 맑은 별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_본문 29-31쪽
답으로 피어나는 질문,
질문으로 피어나는 답
생쥐 동그라미의 질문은 우리 역시 살아가다 한 번쯤 마주해 왔거나 마주하게 될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저 새로워서 하나하나 들여다보기에도 바빴던 무구한 어린 시절이 무르익어 인생의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갈 때 즈음이면, 또 그러다 불현듯 예기치 못한 이별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언제까지라도 영원할 줄 알았던 지구 위에서의 이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마침표를 숙명처럼 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길을 나아가야 하는지 필연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동그라미의 질문에는, 투명한 답 하나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둥글게’라는 말, ‘동그라미’의 모양에는 시작과 끝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삶에 대해 묻게 되는 질문들은 그 자체로 우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며, 우리가 내딛는 그 하나하나의 걸음이 곧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 주리라는 것, 더 나아가 그로 하여 얻게 된 답은 하나의 답으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질문으로 피어나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한 문이 되어 주리라는 것… 그처럼 끝도 시작도 없는 이 동그란 가능성이야말로, ‘동그라미’가 우리에게 넌지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아닐까요?
“얘야, 고민을 너무 무서워하지 말거라. 그것 역시 너를 키워 주는 좋은 햇볕이란다.”_본문 59쪽
단 하나의 동그라미와
하나뿐이 아닌 동심원
동그라미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특성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가 어떤 길을 갈 때에 ‘맞다’고 알려 주는 본능의 감각일 것입니다. 강물 할머니는 동그라미에게 말합니다. 속마음은 절대로 거짓을 알려 주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의 거울이 일러 주는 아름다움대로 살아야 한다고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질문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용기만큼이나 필요한 건 그렇게 길을 나설 때에 순간순간 내 마음의 표지판이 어디를 향해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지 성찰하고 따라갈 수 있는 감각일 것입니다. 그때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 바로 누구에게나 그 표지판이 같지는 않다는 것. 당연하지만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기 쉬운 그것은 마음속의 거울이 일러 주는 아름다움은 모두에게 각각 다른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동그라미가 길 위에서 만난 존재들에게 들었던 것처럼, 별꽃에게는 별꽃만의, 바람에게는 바람만의, 개미와 다람쥐, 소와 올빼미에게는 다 각각 그들만의 따르고 싶은, 따라야 하는 마음속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내가 나의 동그라미를 따르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누군가만의 동그라미가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단 하나의 동그라미가 수천수만 아름다운 동심원 꽃으로 피어날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동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짜 속마음은 그때그때 네가 둥글게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 줄 거야.”_본문 54쪽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 하나
전작 『코코코 나라』를 통해 ‘맹목적으로 학습된 구조 안에서의 안일함을 넘어서, 스스로의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통각’을 일깨워 준 김율희 작가가 『생쥐 동그라미의 여행』이라는 포실포실한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읽히는 이야기 안에는 여전히 김율희 작가 특유의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 숨어 있지만, 바로 그와 같은 뾰족함으로 굳어 있던 우리의 마음 근육을 살살 풀어주어 새길을 향한 걸음에 힘을 실어 주지요. 하지만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 질문들은 앞서 언급했듯 질문은 질문이되, 그 자체로 동그라미와 같은 질문입니다. 선명하고 다채로운 안팎의 풍경들을 언제까지라도 머무르고 싶은 온도로 담아내는 슬로우어스 작가의 손끝에서, 그 질문은 단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색깔로 피어났습니다. 혹시 요즘 여러분에게, 몇 날 며칠 잠 못 이루게 하는 물음표가 있었나요? 물음표 위에 잔잔히 번져 가는 나지막한 답이 되어 줄 동화, 『생쥐 동그라미의 여행』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처음처럼 낯선 길 위에 동그마니 서 있을 영원한 여행자인 우리에게 언제고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 줄 이야기입니다.
“마음속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가 가진 ‘둥글게’를 찾아보자. 자유롭게, 그리고 조화롭게.”_본문 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