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의 기도
가지 말래도 가 보아야 한다
하지 말래도 해 보아야 한다
겪지 말래도
몸소
낱낱이
모조리
쓴 것
쓰인 것
앓아 보아야 한다
-「만종」에서
장시 「만종」은 온갖 것들의 기도가 넘실대는 시편이다. 유실물 보관함, 깨끔발, 양봉꾼, 바보와 얼간이, 불침번, 침묵, 시인, 미궁, 철, 맏이, 틈, 지붕, 흑연, 시, 망태기, 옻……. 여세실의 시는 빳빳하게 다려진 원형(原型)의 언어가 아닌, 모두의 입에 오르내려서 이리저리 뭉그러지고 찌그러진 말의 맛을 전한다. 이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여세실만의 미학이다. 절제된 달변으로는 번역할 수 없는 토속적이고 폭발적인 말들은, 그가 차용하고 있는 화살기도의 형식에 맞춤한다. 보통의 기도가 상실과 결핍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한다면, 여세실의 화살기도-시는 잃은 것을 더 잃기를, 완전히 허물어지기를 바란다. “나의 무너짐이 집이 되게 하세요”라는 기도에는 생의 굴곡을 겸허히 받아들인 자의 지혜와 강단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화살기도』에는 절기가 있고 삶의 생장이 있으며, 그로부터 촉발되는 리듬이 있다. 아래로 꺼질 땐 몸을 더욱 낮추고 가벼이 떠오를 땐 평화를 즐기는 이의 자연스러운 리듬은, 추락이 두려워 뻣뻣하게 굳은 우리의 등을 톡 친다. 빙빙, 입에 착 붙는 말맛으로 독자들을 어르고 달랜다. 계절의 변화가 우리의 소관이 아니듯, 상실과 평안 또한 오고 가도록 내버려두라고. 그 모든 것을 몸소 경험해 보아야만 절기를 알고 철이 들 것이라고.
■ 남은 자의 기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의 얼굴, 노인의 보폭, 나뭇잎의 사그라짐을 본다. 그것들 모두 너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면 걸음이 가뿐해진다. (……) 빙빙 너는 떠나고 너의 습관은 내게 남아 여전히 살아간다. 짝. 짝. 짝. 짝. 짝. 사랑함으로, 더 바짝 껴안음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가벼이 떠나보냄으로, 더 가뿐히 미래를 일궈 내는 힘으로. 너는 이곳에 있구나.
-「타향」에서
『화살기도』 곳곳에는 사랑하는 이를 영영 떠나보내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눈에 띈다. 「타향」의 ‘나’는 이생에 없는 ‘너’의 습관과 기쁨과 절망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현재의 삶을 꾸려 가고 있으며, 「숙련공」의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새치 한 가닥과 한집에서 산다. 여세실은 상실에 얽힌 마음을 서사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서 마주하는 장면 하나하나에 온전히 감응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그려 낸다. 상실을 되짚는 행위는 삶을 과거형으로 만들지만, 여세실의 시는 허공을 가르는 화살처럼 온몸으로 ‘지금’이라는 순간을 산다. 그리하여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상을 채우는 온갖 것들에서 떠난 ‘너’를 알아본다. 「타향」의 ‘너’는 우연히 마주친 아이의 얼굴이기도, 나뭇잎의 사그라짐이기도 하다. 우연과 찰나가 뒤섞여 만들어 내는 순간순간마다 그리운 이를 마주하는데, 생을 어떻게 허투루 낭비할 수 있을까. 슬픔의 숙련공으로서 여세실은 기도한다. “나를 슬픈 자의 발 앞에 두지 마시고, 그가 내가 되게 하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