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말기의 장군 안토니는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한 브루터스 일파를 물리치고 옥타비아누스, 레피더스와 함께 제2차 삼두 정치를 시작한다. 동방의 점령지를 순회하던 집정관 안토니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려 기원전 41년부터 이집트에 머무른다. 로마 내란과 부인 풀비아의 사망 이후 잠시 로마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와 정략결혼을 맺지만 클레오파트라를 잊지 못해 다시 이집트로 향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여왕에게 마음을 빼앗겨 정숙한 부인을 배반한 그의 방탕함을 격렬히 비난하며 로마의 적으로 몰고,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한다. 패배한 두 사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607년경 영국에서 처음 상연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기원전 41년부터 30년까지 이어진 정치적 투쟁과 사랑을 다룬다. 이 작품은 감정과 이성, 쾌락과 통제, 동방과 서방의 충돌 속에서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 시대의 개막이라는 격동의 전환기를 그린다. 이러한 배경은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7세기 초 영국의 시대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통해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던 시대, 클레오파트라는 치명적인 성적 매력과 마력을 지닌 요부로 재현되면서도 서구가 타자화해 온 동양의 힘과 매혹을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클레오파트라는 보다 복합적이고 주체적인, 권력과 전략을 지닌 인물로 재조명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로마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행동한다.
클레오파트라 : 로마는 가라앉아라!
그런 욕을 하는 혀는 썩어 문드러져라!
이번 전쟁에 나도 군비를 부담하고 있소.
그러니 왕국의 군주로서
남자 대신 출전할 테니 반대하지 마시오.
나는 절대 뒤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요.
(171쪽)
감정과 욕망, 정치가의 전략과 사랑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 자기 방식으로 결정한다. 로마의 규범에 맞춰 통제되기를 거부하고 여성·이방인·타자로서 제국의 중심을 흔든다. 이런 점에서 클레오파트라는 당대의 지배적 질서와 가치관을 흔드는 전복적인 존재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 주며 자신을 연기하고 연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죽음조차도 ‘장엄한 퇴장’처럼 연출하며 삶 전체를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 간다. 이로써 서구 백인 남성의 시선 아래 부정적으로 재현되어 온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는 오히려 지배 문화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며, 안토니라는 소위 고결한 영웅을 패배자로 전락시킴으로써 기존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가한다.
이노바버스 :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배는
빛나는 옥좌처럼
물 위에 찬란한 빛을 던졌어요.
두드려 편 황금 판으로 만든 고물,
자줏빛 돛에 향기가 진동하여
바람도 취해 반할 지경이었어요.
은으로 만든 노가
피리 장단에 맞춰 물결을 저으면
밀려 나갔던 물결이
종종걸음으로 노를 뒤쫓아 왔어요.
노 젓는 행동에 반한 듯이….
여왕의 자태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어요.
(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