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학이 아니라 사법시험으로
맞벌이 부모님 덕에 한없이 고마운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여고에서 진학을 준비하던 박은정은 당시 지방에서 그러하듯 사법시험이 아니라 지역 사범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이 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이라는 결심을 했는데, 보수적인 아버지는 그런 박은정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 대학 시절에 우연히 읽게 된 조영래 변호사의 책에 크게 감화되어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검사가 되었다. 수많은 사건을 만나는 와중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데에 엄격했던 박은정 검사는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24년을 살아왔다. 일과 동료를 좋아했으며, 때때로 좌절과 보람도 맛봤다. 열심히 일하고 조용하게 은퇴해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꿈을 꾸었다. 박은정 검사의 꿈은 그랬다.
정치검사 감찰, 그리고 보복, 국회 입성
박은정 검사의 소박한 꿈은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되면서 불가능해진다. 박 검사에게 당시 주어진 업무 중에는 정치 검사인 총장 윤석열에 대한 감찰이 있었는데, 정당한 감찰 업무에도 불구하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감찰담당관의 업무를 방해한다. 그 와중에 총장은 대통령이 되었으며,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자신을 감찰했던 박은정 검사에 대하여 보복수사와 보복감찰이 이어졌으며, 박은정은 결국 검찰을 떠나게 된다. 이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제안으로 검찰을 개혁하고자 했던 박은정 검사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박은정 의원은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서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법률적 관계를 살펴 정면으로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정치판에서 낯선 사례였지만, 박은정이 살아왔던 삶 속에선 당연한 처신이었다.
평범함 속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구체적 목표를 갖고 살아오지는 않았으나 검사나 국회의원이 된 것은 지나고 보면 운명이었다.
다만 이 책 《징계를 마칩니다》는 박은정이 특별함 보다는 얼마나 평범한 삶을 지향하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힘겨운 나날을 보낼 때 거리에서 자신을 응원해 주는 시민들에게서 더 큰 힘을 얻는다. 그들은 모두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저자에게 그들은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다. 특별함 속에는 평범함이, 평범함 속에는 특별함이 있다.
평범함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감동이 있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한다는 믿음은 그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역사의 행간에 새겨진 분명한 증거다. 올바른 검찰 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범한 검찰 공무원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성실히 지킬 때 검찰 개혁은 비로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