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님을 그리듯 때로는 님께서도/ 그때의 이 몸을 생각하신다면/ 난 차라리 이대로가 좋아요/ 강산이 변하고 세월이 흘렀어도/ 주렁주렁 내게 달린 고달픈 사연들과/ 반백에 가까운 주름살투성이/ 변한 내 모습 아랑곳 않고/ 님은, 님만은 그때 그 모습/ 그 순결 그대로이길 원하는// 지금도 눈감으면 황홀하고 고귀한 사랑/ 그 숭고한 바람이 깨지는 건 싫어/ 타락한 나의 모습과 현실에/ 님의 고운 맘 상하면 더더욱 싫어/ 칠십 되고 팔십 되어 꼬부랑 인생/ 아니 생애의 끝날까지라도/ 차라리 이대로가 좋아요/ 꿈속이든 맘속이든 그때 그 모습/ 그대로만 그려요, 그렇게만 만나요”(「이대로가 좋아요」 전문)
시 「이대로가 좋아요」는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외모와 현실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사랑하는 이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 속에서 피어나는 정직한 감정이 시 전반에 잔잔히 배어 있다. 시인의 나이 든 삶과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체념이 아닌 수용’의 태도를 고요히 전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사랑을 돌아보게 만든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주기만 해도 나는 좋다/ 어쩌다 한 번씩 웃어 주면 더욱 좋고/ 행여나 손이라도 한번 잡아 주면/ 눈물이 나도록 고맙겠다/ 만약 만약에 무슨 일 있어/ 멀리 떨어져서 살아야 한 대도/ 죽지 않고 살아서 같은 하늘 아래/ 세상 어디선가 가끔씩 내 생각하며/ 숨 쉬고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있겠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닿지 않아도/ 체념이나 포기는 있을 수 없고/ 집념으로 기다린 보람 있어/ 문득 나 아직 살아 있소!/ 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말 한 마디 들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웃으며 눈감을 수 있겠다”(「작지만 큰 행복」 전문)
시 「작지만 큰 행복」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시간,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년의 고독이나 상실감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과 존재의 의미를 담담하게 말하는 이 시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진실과 감사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삶의 마지막 지점에서조차 사랑은 여전히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시인의 철학이 깊이 스며 있다.
삶이란 결국 ‘가는 길마다 사람이 꽃이었고, 기억이 시가 되었던’ 소풍길임을 조용히 되새기게 해주는 시집 『소풍길 이야기』는, 한 인간이 지나온 세월을 향한 고백이자,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