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시의 숲에서 이미지 찾기
- 박병성 제2시집 「그대는 나의 별」에 부쳐
홍 승 룡
(시인, 대전 CBS 이 밤에 생각나는 시 담당자)
1. 여는 글
시를 쓰는 일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닦아주고 아름다운 정서를 풍부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기 위한 기반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시의 가장 큰 힘은 우리에게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 일은 시 속에서 지은이의 싱싱한 감동,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노여움과 측은함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 즉 지은이의 속 깊은 마음과 생각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흐르는 냇물처럼
굽이치며 살아온 생(生)
아슬한 한낮 잠에
봄날 스친 꿈과 같이
한순간
머물다 가는
인생은 덧없어라.
- 「인생무상(人生無常)」 전문
박병성 시인의 속 깊은 마음이 여기 「인생무상(人生無常)」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이 체험한 인생관이 압축 되어 있다. 시는 압축적이다. 조금 더 강조하자면, 시는 정감을 고도로 집중하여 감동을 표현한다. 외부 충격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여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 나타낸다. 생생한 체험이 내게 준 감정들을 하나의 알맹이를 중심으로 드러낼 만큼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감정의 알맹이는 본질이다.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정감을 고도로 집중한 압축적 표현이 나올 수 있다.
시는 시인의 생생한 체험의 직접성에 바탕을 둔다.
그러니까 시를 보면 무엇보다도 시인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그의 목소리에 실려 있는 그만의 독특한 성품이 빚어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생생한 체험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시를 ‘노래’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이 체험한 현실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가질 때에는 굳이 직접 노래하지 않아도 시는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시에 대한 특징을 말해보라면, 시인의 ‘생생한 체험의 직접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문학 장르와 견주어 짧고, 명징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세련되고, 음악성이 있고, 감정이 풍부하고, 그러면서도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2. 울려오는 사랑의 침묵
사랑은 삶의 궁극이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우리 삶의 극치다. 그래서 문학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사랑인 까닭이다. 만물 생성의 원리도 사랑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삶의 깊은 문제를 다루는 문학에 있어서도 사랑은 항상 중심에 놓인다. 사랑의 위대성에 대한 위대한 고리, 어쩌면 이것이 영원한 문학의 화두일 것이다.
서정과 주정을 특징으로 하는 시에서는 사랑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깊이 있게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다.
박병성의 시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시인 자신의 자잘한 일상의 여울 속에서 ‘빨간 열매’와 같은 사랑의 갈증이 여기저기에서 돋보인다.
먼 하늘 반짝이는 별이
오늘 따라
더욱 빛나는 것은
어디선가 그대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 반짝임만큼이나
그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때문인가요
내 가슴에 들어와
넌지시
볼 수 있는 힘을 줘 그러한가요
텅 빈 가슴 채워 준 그대가
마법처럼 빛 발하는
내 사랑의 별이랍니다.
- 「그대는 나의 별」 전문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대가 생각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그대다.
그대의 반짝이는 사랑의 눈빛이 별빛으로 나에게 오고 있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어디에선가 나타나 사랑한다고 가슴에 안기며 속삭인다. 오늘 따라 더욱 그립다.
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임은
하늘 높이 맴돌고
난 꿈 속을 방황하고
가끔 밤마실 오시더니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오시는 길 마중 가렸더니
이미 오래 전
내게서 멀어져 가고
아, 사랑하는 임은
아른아른 잊혀져 갑니다
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 「짝사랑ㆍ2」 전문
산봉우리가 높으면 계곡이 깊고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 이것은 무릇 진리다.
그리던 임은 오시지 않는다. 애타게 기다려도 하늘 높이 맴돌며 오시지 않는다. 꿈 속에서 가끔 나타나더니, 이제는 멀어져 나는 잊혀져 간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리움
세월 흘러갈수록
많아지나 보다
나이 더해 갈수록
짙어지는가 보다
타다가 타다가
잿빛 그리움으로 남는가 보다.
- 「그리움」 전문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정(情)과 그리움은 아무리 빨고 헹구어도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 자국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랑의 뒷면에 있는 외로운 불면의 뒤척임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그리움을 나이가 더해 갈수록 짙어지다가, 마침내 타다 남은 잿빛으로 그려냈다.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 시조이다. 서경덕이 오지 않는 황진이를 그리는 모습과 같지 않으랴.
사랑 때문에
가슴 졸여 본 적 있는가
그대는
사랑으로 인해
마음 저며 본 적 있는가
그대는
그로 말미암아
눈물 흘려 본 적 있는가.
- 「아픈 사랑」 전문
위의 시 「아픈 사랑」은 박병성 시인의 사랑의 고백을 담고 있다.
읽는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사랑으로 가슴은 졸여 보았지만, 마음까지는 저며 보았지만, 눈물까지 흘려 본 적 있느냐고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지난날 아픈 사랑의 고백은 순간적인 열정과 충동이 아니었기에 깊고 무겁다. 특히, 그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그 상처는 크다. 비밀스런 고백이 상대방에게는 ‘보석’이 될 수 없고, 나에게는 ‘짐’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망각의 물을 흘려보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가지만, 한때의 여린 사랑은 흘러가지 않는다. 순결의 역설이 여기에 숨어 있다. 한때의 사랑이 정말 한때의 사랑이라면, 정말 얼마나 무가치한 것일까?
못다 한 사랑 앞에
구구한 변명하지 말고
타인 시선에 얽매이지 마라
맘껏 주지 못해 고픈 사랑
한 아름 전할 수 있는
오직 진실한 사랑
맛깔나는 사랑 한 상 차려 놓고
행복의 축가를 불러 보려무나
못다 한 사랑 앞에
궁색한 변명하지 말고
주위 시선에 얽매이지 마라
한껏 주지 못해 고픈 사랑
한 아름 안길 수 있는
오직 진정한 사랑
탐스러운 사랑 한 상 차려 놓고
행복의 축배를 들어 보려무나.
- 「자아성찰(自我省察)」 전문
박병성 시인은 자신을 돌이켜 보며 “못다 한 사랑 앞에/ 궁색한 변명하지 말고/ 주위 시선에 얽매이지 마라// 한껏 주지 못해 고픈 사랑/ 한 아름 안길 수 있는/ 오직 진정한 사랑/ 탐스러운 사랑 한 상 차려 놓고/ 행복의 축배를 들어 보려무나.”로 우리에게 자아성찰(自我省察)로 말하고 있다.
3. 유추, 빗대어 말하기
서정시인이 그렇듯이 박병성 시인도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하고 있다. 자연은 그에게 시의 원천이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소재를 가져다 준다.
싱그러움 가득한 산마루 올라
거친 숨 몰아쉴 때
한 줄기 바람 휙 달려와서
한껏 달아오른 얼굴
슬쩍 훑어 주고
갈참나무 숲길 따라
잰걸음으로 빠져나간다
풀도 나무도
방금 지난 바람에 신이 나
함께 어울려 춤춘다
그 자리에 끼어들기 멋쩍어
한동안 머뭇거리다
나도 빠져들어 하나가 된다
산은 모두 살갑게 품어 준다.
- 「산과 바람과 나」 전문
힘들게 정상에 올라 땀을 닦으며 숨 한 번 몰아쉴 때, 한 줄기 바람이 고맙게 불어온다. 정상 주변의 나무와 풀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람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모습으로 실감 있게 그려냈다. 나도 끼어들어 함께 춤추고 싶은데 멋쩍어 한다.
박병성 시인은 자연이 음풍영월(吟風詠月)로서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에서 시를 배우고 자연을 찾는다. 서로 보완하는 노력으로서 자연이다. 그 노력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시를 배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대자연의 섭리다. 말없이 질서대로 묵묵히 움직이는 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체득해야 한다. 시에서 자연의 숨은 이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삶의 깊은 이치를 터득하고 숨은 이치를 찾아낼 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조화 속에서 참을 찾는 것이다.
직벽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을 보라
서 있는 나무에 덩굴손 펼쳐 꼭 붙잡고
굳은 의지 굽히지 않는
담쟁이덩굴을 보라
오르다 오르다 장애물 만나면
물러서지 않고 휘돌아 올라가는
그 힘찬 끈기를 보라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기어오르는
저 담쟁이덩굴을 보라.
- 「담쟁이덩굴」 전문
우리는 가끔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을 본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지만, 시인은 보았다. 굽히지 않는 굳은 의지를 보았다. 오르며 장애물을 만나면 휘돌아 올라가는 끈기도 보았다.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을 통하여 시인은 어떤 일을 쉽게 포기하는 우리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외쳐댄다.
또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꽃 보며 우는 이 있으랴
마음 우울하고 울적할 때
꽃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꽃 보며 미간 찌푸리는 이 있으랴
가슴 먹먹하고 답답할 때
꽃을 보고 있으면
엷은 탄성이 새어 나오는 것을
꽃 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모든 근심도 사라지는 것을.
- 「꽃 보고 있노라면」 전문
시는 효용론적 관점이 있다. 즉,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끼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리고는 그러한 목적을 획득하는 성공 여부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판단한다.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라는 말도 있고 “시는 즐거이 진리를 말하는 유용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시의 효용론적 관점에서 내린 정의다.
마음이 우울하고 울적할 때 꽃을 보아라. 절로 미소가 나온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할 때, 꽃을 보아라. 꽃을 보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그 해 겨울은 추웠다
살을 에듯 몹시 추웠다
어느 건물 옆
톱날에 목이 잘린 채
강제 이주해 온 듯하다
겨우내 몰아친 한파에 시달려
시름겨웠을 것이다
가슴 아린 시련에
점점 야위어 가고
정원 무게 통째 짊어진
그 나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 놓지 않은 듯
가지 끝 시든 잎 하나
붙들고 있다.
- 「그 나무」 전문
가지가 거의 잘리고, 큰 몸통 줄기로 옮겨져 심긴 겨울 나무가 있다. 모진 한파 이겨 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겨 낸 가지 끝의 잎새 하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시인은 이 모습을 통해 시를 배운다는 것은 삶의 깊은 이치를 터득케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을 되비춰 보게 하는 것 아닐까?
4. 시인이 그려내는 이미지
현대 문명은 시각(視覺)의 문화이다. 시에서도 회화성(繪畫性)이 전에 없이 강조되고 있다. 이미지가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실, 이미지 없이 시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에서 언어는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시가 구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시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 곧 이미지를 통하여 추상적 의미를 전달한다.
이미지는 관념과 사물이 만나는 것이다.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 기억, 상상, 꿈 등에 의해 마음 속에서 생산되고 언어에 의해서도 생산된다. 특히, 상상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결합시킨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 속에서 언급되는 감각기관의 모든 대상과 특질을 가리킨다.
시의 이미지는 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해석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장치다.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실제 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이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 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이 수단이 이미지다.
이처럼 시의 이미지는 시인의 관념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감을 환기(喚起)시키고 예술적 효과를 나타낸다.
산촌 등성이에
한가로이
낮달이 놀러 오고
구름 누운 뒷마당
멍석 위엔
내 맘 마구 뒹굴고
어린 새끼 애타게 찾는
어미 소 울음소리
집 밖으로 새어 나오고.
- 「고향 생각」 전문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니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시의 행을 타고 리듬까지 만들어졌다. 시적 언어를 비슷하거나 가능한 대로 나누어 시를 시답게 나타낸 「고향 생각」은 좋은 보기이다. 리듬의 생명력을 잃어가는 현대시를 다시 소생시킨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듬은 시를 언제나 활성화하는 것이다.
굽이굽이 한참을 걸어야만
그제야
얄밉도록 예쁜 시골집들
빼꼼히 보이는 곳
사방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엄마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곳
개울물이 누운 큰 바위 사이로
폭포처럼 떨어지는 절경에 취해
마음 빼앗기고
우암 송시열의 글씨 낙수암과
행암거사 주석영의 오언절구를
바위에 새긴
사백 년 된 느티나무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 불러들여
그늘 쉼터가 되어 주고
나지막한 산마루
낙수정이 운치를 더해 주는 곳
가을 풍물놀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마을
한껏 흔들어 들깨우고
새말, 윗말, 건너말, 웃터골, 쇠죽골 등
이름 하나조차 정겨운
살구나무와 바위가 많아 붙여진
행암리
수묵화처럼 그리워지고
수채화처럼 아른거린다.
- 「내 고향」 전문
고향 산천은 어떠한 이름난 명승지보다 더 아름답다.
박병성 시인은 그림 한 폭을 그려냈다. 나지막한 산마루에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 마을은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개울의 큰 바위에서는 폭포수가 쏟아지고,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엔 사람들이 쉬고 있다.
산촌 초가집
낙숫물 소리에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지붕에 기어오른 박넝쿨
실한 보름달 두어 개
덩그러니 얹어 두었고
밤새 허물벗은 감
지붕 위 채반에 누워
곶감으로 탈바꿈했지
처마 끝 고드름
어린아이 호기심만큼이나
눈 떠 보면 어느 새 자라 있었고
초가지붕 위엔
철마다 동화 같은
수채화를 그려 놓았지
아, 그땐 그랬지.
- 「그땐 그랬지」 전문
이미지는 원래 시어의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다. 리듬과 함께 시의 대표적 구성원리인 이미지는 언제나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5. 맺는 말
(시인의 이미지, 삶의 흔적, 혹은 마디)
우리들은 이제 박병성 시인이 건네는 이미지를 붙잡아 두어야겠다. 시인이 건네는 한 편의 시 속에 있는 이미지를 붙잡아 두는 것이, 금쪽같이 아까운 시간에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다. 어쩌면 세상 사는 일은 이미지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다.
이미지의 역사야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生)의 역사다. 더 많은 이미지를 자신의 내면에 간직한 이는 더 풍부한 삶을 살아가며, 살아낸 이들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저절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지 않는다. 강렬한 것이 아닌 한, 이미지는 붙들어 두고자 하는 이들의 것이다. 삶에서 쌓이는 퇴적물 속에서 흙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화석이 있다면 얼마나 있는가?
이미지는 결코 저절로 달이 뜨듯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지는 복원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것이다. 이미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지워져 버렸다면, 복원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면, 시를 통해 재생할 수 있다. 모든 시는 그 자신 하나의 이미지다. 삶 그 안에서 선명한 이미지를, 핏자국 선명한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하던 우리들 삶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흔적이다. 삶의 마디다.
이제 박병성 시인이 일상적 생활에서 선사한 우연찮은 이미지들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세월이 지날수록 불현듯 하나 둘 떠올라 함께할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닦아 주고 아름다운 정서를 풍부하게 해 준다.
두 번째 시집 「그대는 나의 별」 출간을 축하한다.
202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