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다”
의사 파업으로 인한 의료 공백, 치솟는 물가와 저성장 경제, 끝없이 오르는 주거비, 공공서비스의 무기력함. 사법 불신과 무기력한 관료제. 무책임한 언론과 소셜미디어 정치. 영국 사회가 겪는 이 불만과 불신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정권은 몇 차례나 바뀌었는데, 왜 나아지는 건 없는가?
저자는 이것이 사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민영화와 외주화, 중앙집중식 행정의 병목, 정책의 단기주의, 언론 헤드라인에 휘둘리는 ‘발표 중심 정치’-이 모든 구조적 문제들은 현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현실이다. 저자 샘 프리드먼은 교육부 정책보좌관과 정책연구소 활동, 언론 기고 등 다층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불능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치밀하게 해부한다. 원인은 ‘무능한 정치’에 있지 않다. 더 깊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저자는 이를 ‘과부하, 권력 집중, 과속 상태’라는 세 개의 틀로 정리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과정과 정치 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작동을 멈추는 원인을 설명한다.
읽다 보면 한국의 현실과 놀라울 만큼 비슷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모든 행정기능이 수도권 중앙정부에 집중되며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는 현실, 입법, 사법, 행정 각부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견제와 균형의 구조가 무너진 현실, 유튜브를 비롯한 SNS 이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선정적 미디어 환경에서 여론과 정치적 의사결정이 왜곡과 혼란을 거듭하는 현실, 저자는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스템의 위기는 곧 우리가 다시 질문하고 고쳐나가야 할 현실의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