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어디서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그려지는
공감과 연대, 그리고 나아지는 미래
쉬지 않고 서사를 발굴하는 작가, 설재인의 신작 단편집 『드롭, 드롭, 드롭』이 가장 내밀하게 숨 쉬고 있던 삶의 형태를 다듬어 독자들의 앞에 다다랐다. 2019년 『내가 만든 여자들』을 필두로, 장편 소설부터 단편 소설집, 연작 소설,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그는 이제 독자에게 친밀한 소설가가 되었다.
신간 단편 소설집에는 이전에 발표한 작품 두 편과 이번 소설집을 위하여 새로이 집필한 신작 두 편이 추가되어 있다. ‘멸종’이라는 단어에서 퍼진 서사를 한데 모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현재를 눈앞에 퍼뜨렸다. 설재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재는 이내 가슴 깊은 곳에 숨겨 왔던 공감의 모양새로 떠오른다. 네 편의 소설은 가정 폭력, 지방 소멸, 정상성 등 당장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감 없이 보여 주며 이러한 부정들을 우리는 어떻게 지켜보고 있는지 질문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갈래
한 번쯤은 의구심을 가져 보았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잣대를 기어코 나누고야 마는지. 1인 가구 비혼 여성에게 일어나는, 평범과는 조금 다른 순간을 목도한 표제작 「드롭, 드롭, 드롭」은 이러한 사회의 구석을 꼬집어 다루었다. 비정상적인 반려견과 비정상적인 조카, 그리고 비정상적인 나. 비정상들이 모인다면 정상이 될까, 더 비정상이 될까? 한번 붙은 꼬리표는 평생을 쫓아다니지만, 그러한 비정상끼리의 연합은 더 이상 그들이 그런 이분법적인 단어로 사회에서 나누어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부드러운 멸종의 도래
꼭 재난이 펼쳐지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마땅한가. 설재인만이 그려 낼 수 있는 유쾌한 다크 판타지 속 한 스푼의 희망, 「미림 한 스푼」은 독자들에게 진실된 연대를 제고하도록 한다. 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성인 여성과 가정의 폭력에서 자란 어린 여자아이의 교류는 삭막했던 마음에 응원이라는 싹을 피워 냈다. 그들의 과거는 외따로 어둠을 버틸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서로가 있기에 견딜 만한 세상임을 독자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
이루지 못한 꿈의 말로
이미 바랜 코드를 잡고서 한참을 허덕이다가 끝끝내 밴드 맨이 되지 못한 어떤 이의 가련한 이야기, 「쓰리 코드」. 지극히 무난한 인생 속에서 좋아하는 ‘록’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던 그의 시간은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또는 사랑해 봤던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꿈은 기어이 꿈으로만 남겨지고, 사라지지 않은 가냘픈 바람은 어째서 꿈은 전부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소외된 사람들의 희망
최후의 최후까지 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폭력은 어쩌면 인간의 ‘나아질 수 있다’는 허구의 믿음에 기대어 증식한다는 사실을 꼬집는 「멸종의 자국」. 집단의 무관심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지를 펼쳐 내는 동시에 현실이 되지 못한 아이의 낡은 소망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낸다.
강자와 약자, 불합리와 희망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임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생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곳곳에 부유하는 씁쓸한 후회. 그럼에도,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대로 언젠가 닥쳐올 종말을 이겨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하는 설재인표 멸종 풀코스. 그 안에 들어찬 아득한 메시지를 가슴속에 담아 둔 채 기약 없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