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나의 헤테로토피아
떠돌다
정주는 나와 거리가 먼 단어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다섯 살까지 살았고, 다시 대구 효목동에서 초등학교 1학년 초반까지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름이 사라진 마산과 삼천포에서도 산 적이 있습니다. 수원에서 프랑스의 이브리 쉬르 센느, 불로뉴, 미국의 그린빌이라는 마을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10개월에서 길게는 12년까지 떠돌아다니는 삶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만남과 이별이 있었고, 낯설고도 소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문학도 정착하지 못하나 봅니다. 하나의 문학 장르를 제대로 하기도 벅찬데, 소설을 쓰고 시도 씁니다. 한때 소설에 집중하기 위해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시를 읽었고, 읽다 보니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막과 코르크 수도원과 고래상어의 이빨 사이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노마드의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 같은 소설과 소설 같은 시를 쓰며, “부유하는” 작가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유영이 일으키는 파동의 질감
정주할 수 없는 마음의 바퀴를 굴리며
어떤 세계를 얼마나 돌아다녔을까요
플랑크톤으로 부유하는 나는
당신의 집밥이 될 거예요
3만 개의 이빨 가운데 알 수 없는 사이에 끼어
당신이라는 헤테로토피아에 머물 수 있을까요
별을 반으로 접어 배를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당신의 미세한 사이가 되어
언젠가 우리는 우주에 도달할 겁니다
- 홍숙영「고래상어, 나의 헤테로토피아에게」 부분
기억하다
나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긴 시간 되짚어 보고, 한 편의 시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배를 만들던 이와, 통닭을 굽던 소상공인과, 거리와 빌딩을 청소하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인플루언서, 사진가, 패션 디자이너, 페미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다 이태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던 “채림, 수진, 보성, 경훈, 아파그”를 화석처럼 남겨 두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죽음도 남지 않은 좁고 가파른 골목길
램프의 정령을 불러 환하게 불을 밝혔습니다
파장이 일렁이자 세계의 중심에도 균열이 생겼어요
그들은 눈물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제주도나 피피, 어쩌면 토두섬에서 그림같이 살고 싶었던,
인플루언서, 사진가, 패션 디자이너, 페미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었던,
채림, 수진, 보성, 경훈, 아파그 그리고
크고 작은 숨결들의 관문은 폐쇄당했습니다
- 홍숙영,「그때까지 자스민, 흩어지지 말아요」 부분
인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손가락 두 마디”를 일터에 바치고, 다시 일거리를 찾아 헤맵니다. 겨우 찾은 일거리는 고층 건물의 유리창 청소. “난이도 있는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자리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11층에서 그는 그만 삐끗하고 맙니다. 항상 커다란 호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책을 좋아하던 그는 여전히 11층에서 반짝이고 있을까요?
낮은 숨어 있기 좋은 시간, 민낯을 내밀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별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니 한숨 돌릴 수 있다
반짝이는 것들만 남아 있는 11층, 유리창에 비친 당신의 두 눈동자도
촛불처럼 흔들리며 빛난다
희붐해지는 바깥을 닦으면 저절로 맑아지는 안,
지워지고 싶다면 중력을 거슬러 벽을 타고 오르면 돼
커다란 호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다니던 아버지는 인쇄소 사장이 도망갔다고 울상을 지었다
손가락 두 마디를 바친 일터가 사라지자 우리의 먹을거리도 동이 났다
뒤적여도 잡히지 않는 허공의 새를 향해
총을 겨누거나 붕어빵을 구우려면 민첩한 손놀림이 필요해
풍경을 옮기기 위해서도 손가락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창, 닳아지는 끝
아버지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몸속에 서늘한 돌이 굴러다녔고
핏발 서린 언어들이 소란을 부렸다, 이윽고
난이도 있는 기술을 선보여야 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대에 잠시 바람이 스쳤고 그 순간 신이 우리 곁을 지나갔을지도 모르지
꼭꼭 숨지 않아도 투명해지는 11층,
보이지 않게 서서히 탯줄을 풀자 쑥부쟁이처럼 자라나는 손가락 두 마디
선명해지는 낮이 뭉툭한 끝을 갈아낸다
-「반짝이는 것들만 남은 11층」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