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로부터 시작된 감각의 문학
어린 시절, 마루 밑에 몸을 숨긴 소녀가 있다. 문자 엄마라는 이웃 아주머니의 괄괄한 목소리에 심장이 요동치고, ‘나는 이 집의 진짜 딸일까’ 하는 의구심으로 몸이 오그라든다. 선수원의 수필은 이 상실과 결핍에서 태동된다.
따라서 『소화다리 아래 춤추는 노을』은 상실과 불안을 거쳐, 다시 삶의 감각을 회복해나가는 여정이다. 엄마의 사과 한 알, 친구의 느릿한 걸음, 벽돌 담벼락의 온기, 나일론 극장의 어둑한 천막 속 장면들-이 책의 문장은 모두 한 소녀의 기억이자, 하나의 존재가 태어나는 빛과 어둠의 서사이다.
문학평론가 김종완은 이 책을 두고 “몸으로부터 솟구친 비명, 감각의 언어로 쓰인 슬픔의 시”라 평한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이론이 말하듯, 버림받은 감정은 오히려 주체를 만들고, 슬픔은 감각을 깨우는 힘이 된다.
슬픔의 정동(情動)이 어떻게 서정과 상상력으로 바뀌는지, 어떻게 “이야기 속 여인”들인 심청과 춘향이 ‘나의 내면’으로 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문학적 순례다.
삶이란 때로 무너지며, 그 무너진 자리에 말 이전의 감각들, 침묵 속의 온기가 다시 깃든다. 선수원의 문장은 그 감각을 붙잡고 되살리는 손길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루 밑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며, 그 기억은 언젠가 빛과 마주할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