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은 우리의 일상 속에 너무나 깊게 스며들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분단된 지 8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남북은 너무도 달라졌고,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조차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 속에서도 여전히 “왜 우리는 만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유효하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이 질문을 다시 던지고 대답해야 할 때다.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지정학적 갈등의 지점이며, 남과 북의 관계는 동북아 평화의 핵심 변수이다. 남북이 갈등하면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남북이 대화하면 세계는 그에 주목한다. 단지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의 중대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 미중 전략 경쟁, 일본과의 역사 갈등까지 얽혀 있는 이 지형도 속에서 남북관계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남북 문제는 단순히 역사적 고통의 회고에 머무를 수 없다. 우리는 냉전의 유산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적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 살아갈 세대들에게 보다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남겨줄 수 있는가 하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쟁의 위협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분단이 숙명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특히 지금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남북 모두가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다. 남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성숙한 민주국가로 자리 잡았고, 북한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시장의 확산과 주민들의 생활양식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자구책을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다시 남북의 만남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회복과 상생, 공존의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다.
이 책은 단순한 통일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만나야 하는지를 묻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이유를 되짚으며,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과 미래를 상상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남’은 단순한 제도적 통일을 넘어서는 개념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신뢰, 공감, 그리고 지속 가능한 관계의 복원을 의미한다. 그 여정을 통해, 한반도에서 ‘분단’이 아닌 ‘연결’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