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의 기억을 계승한 외교관,
제국의 운명을 뒤흔드는 거대한 암투에 뛰어들다!
먼 미래, 우주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확장 중인 테익스칼란 제국의 가장자리에서 아직 자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르셀 스테이션. 광업에 특화되어 있으며 전체 3만 명이 거주하는 이 인공 기지에 갑작스럽게 제국의 압력이 들어온다. 연락이 두절된 전임 대사 이스칸드르 아가븐의 행방에 대한 적절한 해명도 없이, 새로운 대사를 파견해 달라는 것이었다. 스테이션 정부는 테익스칼란 언어와 지식 면에서 뛰어난 소양을 갖춘 마히트 디즈마르를 선발하여 이마고(imago), 즉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저장해 타인의 정신 속에서 공존하게(그리고 끝내 융합하게) 하는 장치를 뇌에 심어 주고 제국에 파견한다. 이 기술은 적은 인구로 척박한 우주를 개척하며 생존해야 했던 르셀 스테이션을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국가 기밀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전임 대사 이스칸드르가 오랫동안 귀국하지 않아 데이터를 업데이트하지 못한 탓에 마히트는 현재보다 15년 젊은 그의 이마고를 머리에 심은 채 제국의 수도 ‘시티’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히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싸늘하게 식어 버린 이스칸드르의 시체였다! 이스칸드르는 대체 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인가? 그의 사인(死因)에 의문을 품은 마히트는 제국 정보부에서 파견된 문화 담당자 ‘세 가닥 해초’와 수수께끼를 알아내려 하다가 고위 관료, 황위 계승자, 심지어 황제 본인까지 얽힌 암투의 중심으로 깊숙이 발을 들인다.
‘우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고풍과 첨단이 혼재하는 우주 제국이 던지는 장대한 질문
SF 작가이면서 직업적으로 역사와 기후 정책, 도시 계획에 조예가 깊은 아케이디 마틴이 정교하게 구축해 낸 우주 제국은 미래적인 동시에 레트로적이다. 제국이 수도로 삼은 도시행성 ‘시티’는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기술에 의해 관리되는 곳으로, 집단 지성으로 행동하는 경찰이 존재하며 시민들은 모든 정보가 넘치는 네트워크에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단안경을 장착하고 다닌다. 한편으로 이곳에서는 시(詩)가 지식의 기초이자 모든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적 가치로서 숭상되고, 시민이 아닌 자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고 백안시하며 희생 제의처럼 제국이 우주로 진출하기 전부터 내려오는 구식 의례가 잔존한다. 탐욕스럽게 영역을 확장해 가던 역사 속의 거대한 제국들이 그러하듯 테익스칼란 역시 내부 사정은 복잡하고 혼란하기 그지없다. 군사력뿐만 아니라 주류가 된 탁월한 문화로써 식민지의 사람들을 매료하지만 중심과 변경, 시민과 비시민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격차가 끊임없이 갈등을 부른다. 이러한 모순은 제국민들로부터 ‘야만인’으로 취급받는 데다 이스칸드르라는 타인과 머릿속에서 공존하는 마히트란 인물을 통해서도 유기적으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테익스칼란 문학을 공부하는 데 일생의 대부분 바쳤던 마히트는 막상 제국 내부에서 외부자로서 좌절감과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당신’과 ‘우리’의 범주에 관해 질문한다.
마히트는 이제 모든 사람을 문명인과 미개인으로 나누는 테익스칼란식 패턴에 빠져들었지만 방향은 그 반대, 거꾸로였다. 그녀는 그들만큼이나 인간적이었다. 그들은 그녀만큼이나 인간적이고.(『제국이란 이름의 기억』, p.86)
그들의 이야기에서 오가는 암시와 인용을 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어린애 같다는 걸 알면서도 질투심이 들었다. 비시민이 시민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멍청한 갈망. 테익스칼란은 만족스럽게 갈망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갈망을 더욱 주입하도록 만들어졌다. 마히트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할 말을 삼킬 때마다, 단어나 구절에 나오는 정확한 함축적 의미를 모를 때마다 질투가 몸에 스며들었다.(『제국이란 이름의 기억』, p.195)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야만인’은 진정한 제국민이 될 수 없고, 개인 사이에 우호적인 감정이 피어난다 하더라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테익스칼란과 르셀 스테이션 같은 제국과 식민 기지라는 태생적 차이가 있다면 대등한 관계성을 맺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 정체성이란 테마는 『평화란 이름의 폐허』에 이르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대와의 관계로까지 필연적으로 확장된다. 제국의 중심이 아닌 변경을 주 무대로, 마히트와 이번에는 특사가 된 ‘세 가닥 해초’는 전작과는 역전된 상황에서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한편으로, 인류를 ‘고기’로 인식하는 미지의 외계 종족과 교섭하려 한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기에 소통 불가능한 미지의 상대와 평화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할까? 소통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상대의 언어를 탐구하며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하려는 인물들의 노력은 경이감과 함께 감동을 자아내며, 먼 미래의 낯선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거대하고 복잡한 실제 현실의 문제를 상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SF의 미덕을 느끼게 한다.
■줄거리
1권 제국이란 이름의 기억
거대한 우주 제국 테익스칼란에 아직 흡수되지 않은 변방의 르셀 스테이션. 신임 대사로 선정된 마히트 디즈마르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전임 대사의 기억을 담은 기계 ‘이마고’를 머릿속에 심은 채 테익스칼란의 수도로 파견된다. 그러나 선망하던 제국에서 마히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끊임없는 위협이었다.
2권 평화란 이름의 폐허
제국 수도 ‘시티’를 뒤흔든 소요가 정리된 지 석 달 후. 경계 지역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적이 제국군 전함을 차례차례 파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미지의 상대와 협상할 특사로 임명된 정보부 차관은 르셀 대사 마히트 디즈마르와 함께 위험 지역의 최전선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