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의 부담은 덜고 단편의 매력을 더한
에밀 졸라의 짧은 이야기들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는 세심한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냉철하게 그려 낸,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아셰트 출판사의 발송 부서에서 일하던 1863년부터 신문과 잡지에 콩트와 기사를 기고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 그는, 《테레즈 라캥》을 비롯해 루공마카르 총서의 《목로주점》, 《제르미날》 등을 통해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역량은 장편에만 머무르지 않고 짧은 이야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졸라의 단편은 크게 콩트(conte)와 누벨(nouvelle)로 구분할 수 있는데, 둘은 모두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전개 방식과 깊이에 있어 차이가 있다. 콩트는 대개 원서 3~5쪽 분량으로 구성과 인물 묘사가 간결하며, 빠른 전개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반면 누벨은 원서 30~40쪽 내외의 분량으로 콩트보다 조금 더 길고, 정교한 구성과 심리 묘사,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다. 《독한 사랑》에 실린 열 편의 단편 중 〈광고의 피해자〉, 〈우리를 탈출한 맹수들〉, 〈후작 부인의 어깨〉, 〈가난한 소녀들은 무슨 꿈을 꿀까〉, 〈독한 사랑〉 등은 콩트, 〈낭타〉, 〈네죵 부인〉, 〈수르디 부인〉, 〈결혼의 방식〉, 〈죽음의 방식〉 등은 누벨이라 할 수 있다.
졸라는 이 짧은 이야기들을 장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일종의 ‘실험의 장’이자 창작의 ‘휴식처’로 삼았다. 단편에서는 장편에서 보여 준 과학적 관찰과 자연주의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자유로운 형식과 어조를 통해 다양한 주제와 감정을 유연하게 풀어냈다. 그의 단편들은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에밀 졸라라는 작가의 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성취인 것이다.
부와 가난, 사랑과 배신, 결혼과 죽음……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열 편의 서사
치밀한 리얼리티와 낭만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열 편의 단편 중에서 여러 면에서 작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낭타〉는 자신의 힘과 의지로 사회적 상승을 꿈꾸던 주인공이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강력한 의지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의 정념을 그리고 있다.
〈네죵 부인〉은 지방의 귀족 아들인 주인공이 당혹스럽고 영리한 ‘유혹의 기술’을 구사하는 파리지엔인 네죵 부인을 통해 에밀 졸라식 ‘감정 교육’을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수르디 부인〉은 순종적인 여성과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경계에 놓인 듯한 수르디 부인을 통해 화가인 남편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억눌린 여성의 초상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있다.
〈광고의 피해자〉는 19세기 프랑스 광고 문화에 대한 통찰을 블랙 유머로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의 소비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를 탈출한 맹수들〉은 사자와 하이에나의 시선을 빌려 인간 사회를 풍자한 우화적 이야기이다.
〈후작 부인의 어깨〉와 〈가난한 소녀들은 무슨 꿈을 꿀까〉에서는 계층의 간극과 빈곤층 여성의 삶에 대한 졸라의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인다.
표제작 〈독한 사랑〉은 파국적 결말을 맞은 치정의 이야기를 통해 정념의 파괴력과 인간 감정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결혼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은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민이라는 각 계층의 결혼과 죽음을 다룬 군상극으로 인간사의 보편성이 계급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