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확실히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종말의 감각을 느끼고 있다. 지구온난화, 빙하 소멸, 해양 산성화, 6차 대멸종… 새삼스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보는 넘쳐난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진지하게 대하는 대신,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쪽을 택한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 위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규모와 무게에 압도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찌해 볼 생각도 못 하고 제 발등을 찍는 결과가 닥치더라도 경고를 외면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종말의 전문가들이 있다. “500년 이상 세계의 종말을 경험한 전문가들, 아마존 원주민에게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걱정은 우리가 해야 한다. 원주민 사상가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간결한 말처럼 말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500년 동안 저항해 왔습니다. 제 걱정은 백인들도 저항할 수 있을지입니다.’”
이파지 세계로서 숲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이파지’(ipaji)라는 단어가 있다. ‘샤먼의 힘을 가진’ 혹은 ‘(샤먼) 주인을 가진’이란 뜻의 형용사로, 때로는 동사나 명사로도 사용된다. 샤먼이 되기 위해서는 고된 훈련과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는 샤먼의 힘을 가질 수 있다. 즉, 약간 ‘이파지’일 수 있다. 비인간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재규어는 물론 작은 존재들도 다양한 이유로 이파지일 수 있다. “예컨대 쿠라소우는 보통은 사냥하기 쉬운 새이지만 때로는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쏴도 총알이 피해 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마법이 걸린 동물, 즉 이파지이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 카리푸나족에게 숲은 이파지로 가득한 곳이다.
이 책의 목적은 뚜렷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반드시 지금 이 모습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혹은 사회학자 존 로가 제안한 ‘단일 세계’(one-world world)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일화들은 어려운 이론 대신, 원주민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모습을 잘 관찰하기만 해도, 지금의 세계를 허무는 법을 배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파지로 가득한 세계, 카리푸나족이 지키는 숲의 존재들이 내뿜는 무수한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언월딩의 시작이다.
세계를 짓기 위한 세계 허물기
세계-짓기(worlding)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라면, 언월딩(unworlding)은 이를 거스른다. 그러나 언월딩은 세계-안-짓기(not worlding)와 다르다. 특정 세계를 만드는 데 불참하고 거리를 두는 무(無)행동도 포함하지만, 동시에 적극적인 행위가 수반되기도 한다. 즉, 이미 구축된 세계를 해체하거나, 취소하거나, 되돌리거나, 뒤집거나, 무너뜨리거나, 분해하는 행동도 아우른다. 언월딩은 세계를 원점에서 재고하고, ‘현실은 지금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언월딩을 모르는 사람은, 지어진 세계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세계를 허물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없다. 세계-짓기는 세계-허물기에 달려 있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열악한 환경으로 현지에서 악명 높은 주앙 파울루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아리파 할아버지를 간병하며 하룻밤을 보낸다. 그곳에서 아리파 할아버지가 들려준 놀라운 이야기는 서서히 후퇴하는 한 세계의 모습과 함께, 우리가 아직은 그 세계에 화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필요한 건, 그저 한 사람의 얽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