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극우인가?
: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신념
“그렇다면 ‘극우’란 무엇일까요? 이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특정 집단이나 성향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런 성향을 극우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보수 인물이나 집단을 무턱대고 극우라고 칭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극우’는 정치적 수사로 변질될 겁니다. 객관적 개념으로서는 무의미해질 테죠. 결국 진짜 극우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137쪽)
누가 극우이고, 극우의 정의는 무엇인가? 저자는 유럽에서 번성하고 있는 극우와 비교하며, ‘태극기부대’를 한국의 극우라고 칭한다. ‘극우’란 말 그대로 ‘우파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우파는 일반적으로 자유시장경제, 개인의 자유, 전통적 가치를 평가하고 지키려는 이들이다. 극우는 이에 더해 배타적 민족주의, 반엘리트주의, 반국제화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를 옹호하고 추구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지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헝가리, 폴란드,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이런 극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왜 태극기부대가 극우인가? 저자는 극우세력에는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고 말한다. “극우는 먼저 ‘우리’(기독교 유럽인)를 정의합니다. 자연히 ‘그들’(무슬림 침입자)도 설정되죠. 극우의 논리에서 그들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내부의 적, 즉 ‘배신자’(정부, 유럽연합)도 등장합니다. 반대로, 이 모든 혼란을 해결할 영웅(오르반)도 필요하죠. 결국 극우는 문제와 해결 모두 정체성에 기반을 둡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가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인가가, 그리고 이들 사이의 대결이 더 중요합니다. 극우는, 그리고 극우의 정치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우리와 이를 위협하는 저들과의 대결이 핵심인 겁니다.”(145쪽)
극우를 우리와 저들과의 대결 중심으로 이해한다면 유럽의 극우와 태극기부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태극기부대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북한에 우호적인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사회단체, 언론, 노조 등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성향을 띠면 자신들의 적이고, 종북세력일 뿐이다. 그럼 태극기부대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이승만, 박정희‧박근혜를 따르는 애국시민이다. 그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시장경제를 지키고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유럽 극우와 달리 ‘반국제화주의’ ‘민족주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친미’와 ‘반공’을 대입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태극기부대가 바라보는 ‘민족’은 뉴라이트가 받아들이는 그것과 비슷하다. 즉 그들이 바라보는 민족은 단순한 혈연이나 역사적 연대감을 나눈 집단이 아니다. 북한 공산주의에 맞서 성장해온 반공세력이 곧 ‘우리 민족’인 셈이다. 또한 대한민국을 북한으로부터 지켜준 미국 또한 ‘우리’에 해당한다. ‘반공’과 ‘친미’는 따로 떼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태극기부대 또한 강한 민족주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극우세력을 통치에 활용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 뉴라이트와 어버이연합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돼 야권으로의 첫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이어서 노무현의 참여정부로 이어져 10년 동안 민주당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보수 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간주하며, 진보를 이른바 “친북” 혹은 “사회주의 정부”로 매도하며 비판했다. 극우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고, 세력을 넓혀갔다.
그 시작은 뉴라이트였다. 주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며 성장한 뉴라이트는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출범시키며 세를 확장했다. 뉴라이트는 ‘반공’을 강조하고, ‘민족’이 아닌 ‘국가’ 중심의 관점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박정희 재평가 붐을 일으켰고,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뉴라이트가 싹을 틔운 보수의 사상은 극우세력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한국에 극우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의 민주주의는 갈수록 퇴보했다. 촛불시위 등 시민들의 반발도 커져만 갔다. 이명박 정부는 이 위기를 권위주의적 조치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국정원은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며 공작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 틈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같은 극우세력이 성장해갔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또한 권위주의 강화를 통해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또 극우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으로 극우 조직을 지원하고, 감독하기까지 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청와대, 삼성,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을 정기적으로 만나 친정부 ·친재벌 시위 단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했는데, 여기서 청와대는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고엽제전우회 등 10여 개의 우파단체를 특정하여 현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등 대기업들이 지원한 금액은 69여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극우세력을 통치에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에서 싹을 틔운 극우세력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더욱 활발히 성장했다. 정부의 암묵적, 때로는 명시적 지원 속에서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이는 단순히 한 정권의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를 시험대에 올리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촛불집회 VS 친박집회
: 태극기부대의 탄생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분노한 국민들은 광장으로 나가 “박근혜 탄핵”을 외쳤고, 촛불집회의 압도적인 정치적 에너지로 인해 결국 박근혜는 탄핵됐다. 그리고 2017년에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촛불집회가 한국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일으킨 만큼,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촛불집회에 대항하는 친박집회가 매주 열렸고, 여기에 일반 시민들도 많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우리가 요즘 ‘태극기부대’라고 부르는 세력이 형성됐고, 이 시기에 한국의 극우가 급성장했던 것이다. “태극기부대는 또한 집회와 시위 활동을 점차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집회 장소는 신중히 선택되었고, 최대한의 주목과 영향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 세워졌죠.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이전의 비조직적인 집회들과는 차별화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정치적 존재감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태극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열정적으로 정치 신념을 과시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태극기집회는 단순한 맞불집회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정치적 위치를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88쪽)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어느새 이들은 반정부세력으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탄핵을 이끈 문재인 정부가 곧 그들의 적이 되었고, 그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시내에서 박근혜의 석방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조원진 전 의원이 이끄는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이 태극기집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집회를 이어간 전광훈 목사는 이 시기에 극우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저렇게 만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로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이들은 ‘태극기부대’로서 세를 과시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태극기부대로 만들었나
: 극우의 성장 배경
태극기부대가 성장한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저자는 한국 우파의 단조로운 사상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 우파가 계속 권력을 잡고 휘두르면서 우파의 사상, 즉 반공, 친미 사상은 남한 정체성의 큰 부분이 됐다. 이를 강조하고 활용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었고, 이것이 극우가 자랄 자양분이 됐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다. 우파가 보기에 이 시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의 분노가 뉴라이트를 등장하게 했고, 그 싹을 이어받아 극우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난 뒤의 ‘정치적 고립’도 이들이 성장한 배경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어느 선거든 민주당계 정당과 민자당계 정당의 대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제3당이 아무리 유명하고 선전해도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자유한국당조차 박근혜에게 등을 돌리자 그들을 대변해주는 정당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제도권 테두리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이 자연스레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한 진보정당도 보수정당도 해결하지 못한 노년층의 ‘경제적 고립’도 이들의 불만을 키운 원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태극기부대의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시위 문화를 만들어 집회를 하나의 축제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함께 웃으며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서로 동료애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들이 모인 자리 같았습니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와요.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거든요. 이렇게 친구들도 만나고 자주 볼 수 있어 좋죠.’”(182쪽) 유튜브와 카카오톡은 그들의 소통 창구였다. 유튜브 활동이 돈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장 중계를 통해 태극기 운동 유지에 일조하는 역할을 했고, 이들 덕에 태극기부대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에게 전파될 수 있었다. 결국 태극기부대는 불만, 고립, 그리고 조직적 동원의 조합이 작동해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힘을 모았던 것이다.
청년 남성과 중국 혐오
: 한국 극우의 새로운 흐름
윤석열이 일으킨 계엄사태는 한국 정치의 여러 모순을 보여줬다. 특히 극우를 다시 광장에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한동안 극우세력은 힘을 쓸 수 없었다. 윤석열은 집권하자마자 민주당, 이재명, 노조 등 소위 좌파들을 집중 공격했고, 이 때문에 극우의 거리 정치는 설 자리를 잃었다. 문재인 정부 등 자신들이 직접 싸울 상대가 사라진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12‧3 계엄이 모든 걸 바꿨다. 이후 벌어진 정치적 혼란은 극우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고, 그들은 다시 결집했다. 서울서부지법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집회 현장에서 욕설을 하는 등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더 ‘서구형 극우’와 닮아 있었다. ‘중국 혐오’, 즉 서구의 극우에서 흔히 보이는 외국인혐오와 인종차별이 한국의 극우에 적극적으로 흡수된 것이다.
2030, 특히 젊은 남성의 극우 지지 확대도 뚜렷해졌다. “탄핵 정국 당시, ‘이대녀’들은 여의도로 모였습니다. 윤석열 파면을 외쳤죠. 반면 ‘이대남’은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나섰죠. 같은 세대 안에서도 성별에 따라 정치적 공간이 갈렸던 겁니다. 이들을 가르고 이대남을 극우의 품으로 밀어낸 배경은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98쪽) 이대남의 불만을 적극 활용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이준석이다. 그는 ‘군 복무 보상’ ‘여성가족부 폐지’ ‘여성 장관 할당제 폐지’ 같은 이슈를 앞세우며 ‘남성 역차별’을 강조하며 부상했다. 탄핵 정국 당시 윤석열과 극우화한 국민의힘도 이런 청년 남성들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활용하기도 했다.
청년층, 특히 청년 남성층의 극우정당 지지는 유럽 극우가 성장하는 데 큰 발판이 됐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에서 극우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젊은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청년 남성들의 친윤 시위는 유럽의 극우와 궤를 같이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종차별과 청년의 참여는 윤석열의 계엄사태로 나타난 극우의 진화된 주요 단면이었습니다. 이제 극우는 더는 과거의 노쇠한 반공 집단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혐오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며, 청년층의 불만과 소외감을 정치화합니다. ‘외국인혐오’는 단지 낙오한 중장년층의 정서가 아니라, 청년들 사이에서도 ‘공정’과 ‘역차별’이라는 말로 포장되며 퍼지고 있죠. 유튜브 채널과 커뮤니티는 그 불만을 분노로 바꾸고, 그 분노는 다시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인지를 분명히 나눈 뒤, 사실보다는 감정을 따르는 움직임입니다. 극우는 더 이상 뒤에서 소리만 지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국정을 움직이고, 권력의 중심과 직결된 행위자입니다. 극우 시대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죠. 한국사회가 그 문으로 들어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204쪽)
한국은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극우세력의 궤적을 똑똑히 지켜봤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또 극우화될 수 있다는 것을 봐왔다. 저자는 극우의 성장과 폭력은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정치적 분열이 더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겠죠.”(167쪽)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극우세력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계엄사태 때도 봤듯이 작은 불씨 하나가 어느새 큰불로 번진다는 걸 확인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이 그랬듯 늘 이런 극우세력을 이용하는 정치세력이 있고, 그들로 인해 한국사회는 언제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경제적 불평등은 고착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혼란과 불안정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더는 미봉책으로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개혁과 새로운 방향 설정이 요구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217~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