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과 문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중국의 경계적 타자, 서발턴을 통해 중국성을 묻다
중국은 한족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현대 중국의 형성 과정에서 여러 소수민족이 사라지고 병합되는 과정을 거쳐 56개의 공인된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지역 간 문화적, 언어적 차이 또한 매우 크다. "서발턴"은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 하층 계급 또는 억압받는 집단으로 지칭되었으며, 이후 비엘리트 집단, 역사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에서는 한족 중심의 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활용되고 소외되고 억압된 여러 소수민족을 의미한다. 이들은 공간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하면서 중국의 중심성을 구성하고 정당화하는 데 상호 전략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따라서,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나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주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연구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의 미래 역시 암울하고 불투명하다.
『탈구된 중국』은 중국과 중국 문화를 불변하고 연속적인, 본질적인 "중국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자 드루 글래드니는 학계에서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전제해왔던 주류민족과 소수민족, 중심부와 주변부, 원시와 근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비판적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중국 및 중국성에 대한 관념에 일반적으로 부합하지 않은 경계적 타자, 서발턴 주체들을 통해 중국을 알고자 한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소수민족 형성의 정치경제적, 역사적 과정과 한족을 포함한 대부분 중국 민족들의 내적 이질성을 더 자세히 이해하도록 이끈다.
▶ 중국 민족주의의 배경과 소수민족이 재현되는 방식을 밝히다
이 책은 중국의 민족 정체성과 문화민족주의의 양상을 소개하고, 국가가 공식적인 민족성에 초점을 두기 위해 어떻게 소수민족을 간과해왔는지, 그리고 21세기에는 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성찰한다. 저자는 중국에서 소수민족 연구는 민족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중국에서 문화적 차이를 이용한 정치의 중요성과도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어떻게 재현되고 표현될까. 저자는 중국의 문화적 지형의 많은 부분이 박물관의 확장, 민족 예술품의 판매 증가, 대중 테마파크의 증가와 함께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중국의 테마공원에서 소수민족은 한족보다 더 다채롭고 문화적일 뿐 아니라 관능적으로 재현되는데, 이는 국가가 특정한 방식으로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고 통제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저자는 대립하고 혼재하는 문화 현상 속에서 국가성의 경로를 분류하고 확립하는 것이 현대 민족국가가 헤게모니적 담론을 통제하는 수단임을 밝힌다.
▶ 중국 내 이슬람 문화의 혼재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이 책은 중국 소수민족을 다룸에 있어 중국과 이슬람 문화의 혼재에 주목한다. 중국에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이 충돌한 역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중국 이슬람의 1200년 역사에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다툼보다는 각 집단 내부의 다툼이 더 자주 있었고, 두 집단은 서로 결혼하기도 하고 개종도 했으며 평화롭게 섞여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무슬림 소수민족인 후이족에 초점을 맞추며, 저자는 그들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핀다. 그리고 묘지가 공동체의 정체성과 규범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가 근본주의 노선에 따라 분열되고 인종청소 캠페인과 배타적인 주류집단의 형성이 이어지는 지금, 묘지를 바탕으로 한 후이족의 중용, 관용, 상호성의 개념은 중국 문명의 충만함과 다양성, 그리고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서발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국의 교육시스템과 무슬림 전통의 충돌
중국의 교육 체계는 소수민족, 특히 무슬림 공동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소수민족은 교육 수준이 낮은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한족 중심의 교육과 문화적 우위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슬람은 공립교육 과정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으며, 무슬림은 출판물에서 이국적이거나 관능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한족에게 무슬림 정체성에 대한 유일한 정보 통로가 출판물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이는 문제를 낳는다. 비록 1950년대 이후 소수민족 교육에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교육은 중앙정부의 표준화된 내용에 의존하며 소수민족의 고유한 관습과 전통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무슬림 청년들은 종교적 지식을 공립교육이 아닌 모스크나 지역 공동체에서 얻고 있다.
국가가 후원하는 중국 무슬림에 대한 교육과 무슬림 스스로의 자기 재현과 이슬람 교육방식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섞여 있지만 실제로 통합된 적은 없다. 중국의 공립교육이 이슬람에 대한 더 많은 무슬림의 정보를 통합할 때까지 이러한 흐름은 계속 평행선을 달리며 지속적인 오해와 잘못된 재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땅과 역사,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관념을 억제하고, 이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국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념을 형성하는 토착성의 역할이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