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문화 엘리트, 서발턴의 다양한 목소리는
어떻게 서로 경합하며
미디어에서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중국의 서발턴, 농민공을 통해
중국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그리다
중국은 빠른 산업화로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 또한 심화되었다.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 ‘농민공’은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음에도 여전히 주변화된 존재로 남아 있다. 과거 국가의 주인이었던 농민과 노동자는 이제 정치적 주체가 아닌, ‘서발턴’으로 전락한 것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농민공 문제에 제도적, 구조적으로 접근해왔지만, 중국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문화정치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연구에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엘리트들에게 그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도시의 이방인인 농민공들은 그들의 노동을 통해서만 주로 인지된다.
『서발턴 차이나』의 저자 완닝 순은 정치적 주체로서 농민공이라는 서발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과 함께 문화적 실천과 전략 및 표현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농촌 출신 이주민은 보다 쉽게 읽기 자료와 시각 자료에 접근하고 그것을 공유한다. 그러나 중국의 미디어 환경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며, 농민공을 그들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특정한 위치에 고정시킬 수 있다. 농촌 출신 이주민들이 어떤 형식과 장르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표현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농촌 출신 이주민에 대한 주류의 재현과 서발턴의 자기재현을 병치하여 살피고 미디어 형식 및 제작 관행과 미디어 소비자들의 소비 관행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중국 서발턴이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말하는지, 이러한 미디어 실천이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를 통해 농민공들의 미디어 및 문화적 실천과 서발턴 의식 수준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 뉴스 미디어와 도시영화에 나타난 농민공,
중국의 주류 서사가 사회적 갈등과 관계를 조정하는 방법
이 책은 먼저 주류 미디어인 뉴스와 영화에서 농민공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핀다. 농촌에서 이주한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및 체불에 맞서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는데, 이에 대한 보도가 농민공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일정 수준 기여한다는 것이다. 뉴스 저널리즘은 중국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장 주변화된 사회 집단에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독단적 기업의 파렴치한 관행을 단속하려는 당-국가를 의도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정책에 따라 뉴스 미디어가 사회적 갈등을 그리는 방법도 변화하는데,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이 뉴스에서 원하는 내용과 뉴스가 실제로 전달하는 내용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저자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상업영화 장르인 도시영화로 초점을 옮겨 국가가 후원하는 영화와 상업영화 등의 주류영화가 건설 업계의 노동분쟁, 산업재해, 사망사고 등의 사례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살펴본다.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농민공들은 서발턴으로서의 자기 인식이 고조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토론과 사회화가 집합적 의식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영화가 지배 계급과 자본, 그리고 오만한 도시인에 대한 노동자들의 원한이나 분노를 완화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 자기재현의 형태로 나타나는 서발턴 정치
동영상이나 핸드폰 카메라의 사진과 같은 스몰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는 농촌 출신 이주민,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들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저자는 스몰 미디어 기술들이 서발턴 정치에서 갖는 잠재적 유용성 사이의 관계를 살피며 각종 형식의 다큐멘터리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정의 정치’에 대해 분석한다. 디지털 비디오는 활동가들에게 접근이 쉽고, 참여자들이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피할 수 있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도구로 인식된다. 농촌 출신 이주 문화 활동가들은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에 반박하고, 농민공들의 의식을 고양하며, 대안적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가 후원하는 사진전, 전문 사진작가들의 작품, 이주 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 등에서 중국 농민공은 어떻게 나타날까. 국가의 후원을 받는 사진들에서 농촌 출신 이주자들은 대부분 감정노동을 기꺼이 수행하며 ‘조화로운 사회’에 기여하는 행복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과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 카메라를 활용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주류 표현 양식에 대응하여 이주민 활동가들은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해 그들의 일상적 경험을 기록하고 인증하며,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이미지를 유포한다.
저자는 자기재현에 대한 분석을 이어가며 노동자가 창작하는 독특한 문학 형식인 ‘다공 시가’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이것이 갖는 증언과 저항 및 역사적 연대기로서의 성격을 고찰한다. 문학적 현상으로의 노동자 시가에 대한 공적 논쟁에서 나타난 핵심 지점들을 조명한다. 이러한 ‘다공문학’은 중국 노동의 삶과 산업화의 경험에 관한 가장 진실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주민 여성들은 직접 소설을 쓰기도 하는데, 이러한 문학 작품들은 농촌에서 이주해 온 여성들이 극도로 계층화된 도시사회 세계를 헤쳐나가기 위해 어떻게 성(性)을 활용하는지 대안적 설명을 제공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서발턴의 창작물을 통해 그들의 생활에 공감하고, 그들의 결정과 행동이 도덕적·물질적 세계에서 강요된 제약에 기초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