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도, 삶은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월급을 받아도 마음이 늘 결핍된 이들에게 날것의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불멍 캠프에 우연히 참가한 것을 계기로, 도시의 속도를 내려놓고 ‘돈 없이 살아보기’에 도전하는 생생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강화도에서 여수까지 5백 킬로미터를, 돈 한 푼 없이, 덤스터 다이빙과 탁발, 그리고 노숙을 하며 걷고 또 걷는다. 이들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도보 여행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진지한 질문이 된다.
불멍 캠프에서 나를 만나다!
직장을 삶의 전부로 여기며, 월급으로 생활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저자는, 어느 날 ‘불멍 캠프’를 떠나면서, 일상에 균열을 낸다. 강화도 볼음도에서 열린 불멍 캠프는, 화장실도 없고, 변변한 전기 시설도 수도 시설도 없이, 밤마다 인디언 티피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하는 야생 캠프였다. 음식을 해 먹을 때마다 불을 피워야 하고,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을 뜯고, 어망 낚시로 물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각자의 재능을 발휘해 워크숍을 열면서 공동체 생활은 점점 활기를 띤다. 요가, 우드카빙, 하모니카, 손바느질, 급기야 장작 패기와 불 피우기 워크숍이 열렸다. 저자 역시 남다른 ‘실행력’으로 누군가 버린 욕조를 끌어와 노천탕을 만든다.
누구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구든 따라하며 함께 배우고 만든다. 불멍 캠프는 스스로 움직이면 무엇이든 생겨나는 마법의 장소였다. 그곳은 일상의 질서를 비우고 삶을 다시 채우는 곳이었다.
음식은 돈을 주고 사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일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어떤 재난 상황에 놓이더라도 이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인생의 보험을 새로 하나 들어놓은 것 같았다. (34쪽)
이때만 해도 어차피 도시로 돌아가니 ‘잠깐의 일탈’일 뿐이라고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이런 삶을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함께 걸으며 길멍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만나다!
볼음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이곳에서 함께한 친구 몇몇이 각자의 방식으로 걸으며 길멍 캠프를 떠났다. 누군가는 불멍 캠프의 영감을 되새기려, 누군가는 서바이벌 캠핑을 하러, 누군가는 오로지 길 위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스스로 가벼워지기 위해…. 처음에는 운동화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함께할 의지가 없던 저자였지만, 친구가 하루 만에 구해 온 낡은 운동화 한 켤레로 길 위에 나선다. 아무런 짐도 없이 신용카드와 핸드폰만 달랑 들고 목적지도 모른 채 시작된 길멍 캠프는 인천, 서울, 대전, 금산, 곡성, 여수까지 이어졌다.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 돈을 쓰지 않고, 가능한 한 길에서 필요한 것을 얻으며 걷는 여정이었지만, 정작 필요한 건 많지 않았다. 길 위에 구르는 복숭아 하나, 덤스터 다이빙으로 구한 식사, 주운 냄비로 끓인 3분 카레, 공원 정자에서 얻은 잠자리, 그리고 가는 곳마다 이들을 환영해준 새로운 삶의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 이 여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함께 길멍을 떠날 수 있는 ‘용기’였다.
자발적으로 불편을 선택한 이들의 여행은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라, 북미 원부민 왐파노그족의 원형 대화처럼 서로에게 진실한 시간을 나누는 삶의 실험이었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한 사람은 타인과도 함께할 수 없다”는 말처럼, 이 캠프는 길멍하며 걷는 법을 통해,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길,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노래를 부르며 민지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걸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251쪽)
읽고 나면, 당신도 걷고 싶어진다
결핍은 두려운 게 아니었다. 두려운 건 연결되지 못하는 삶이었다. 헌옷함에서 주운 낡은 운동화 하나로 시작된 여정, 누군가에게 한 끼의 밥을 얻고, 태풍을 이겨낸 뒤 꼭 안아주고, 침묵으로 존재를 나누는 사람들. 불멍하고 길멍하던 시간들은, 결국 삶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뚜렷한 삶의 계획이 없어도, 함께 걸으며 멍하니 있어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매일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희미해진 이들에게 이 책은 작은 불씨를 보여준다. 이들이 키운 불씨는 은근히 뜨겁고, 오래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