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삶이 되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동시
유진 시인의 동시집 『안녕, 엄지발가락』은 ‘그림 없는 동시집’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한 장식 없이 맑고 단정한 말로 삶의 결을 따라간다.
텃밭과 길고양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계절의 변화, 땅과 하늘 사이의 숨결-
그 모든 것이 이 시집에서는 동시가 된다.
이 동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섬세한 시선이다.
배춧잎에 앉은 애벌레를 옮겨주며 나비를 기다리는 마음,
거미집을 걷어내며 재개발을 떠올리는 장면,
파리채 앞에서 갈등하는 내면의 윤리까지.
작가는 작은 행동 하나에서도 도덕성과 생태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이 시집은 ‘동시’가 어린이를 위한 장르라는 통념을 넘어서
‘삶의 시’를 지향하는 동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 자연에 대한 경외, 타자에 대한 배려가
과장 없이 담담하게 서술되며, 그 진정성은 오히려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엄지발가락’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시인은
구멍 난 양말 사이로 삐죽 나온 아이의 엄지발가락에 눈길을 주고,
그 아이와 눈 마주치며 말한다. “안녕, 엄지발가락.”
그 인사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을 바라보고 존중하는 시인의 태도이자,
삶과 존재를 따뜻하게 인정하는 문학의 인사다.
한편, 시집에 등장하는 아이들과의 교육적 실천은
시인이 걸어온 길의 증거이자, 시의 토양이다.
‘꽃피는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시 속에 실명 혹은 별명으로 등장하며
시를 단지 쓰는 일이 아니라 ‘사는 일’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 시집은 말하자면, ‘느린 문학’이다.
삶을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자연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오래 들여다보고 오래 기다리는 태도가 스며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널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
벚꽃잎 한 장을 잡고 조용히 삼키는 소원,
상상임신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잠드는 시간.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오늘날 동시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감각이다.
『안녕, 엄지발가락』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말한다.
‘좋은 시는, 당신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말을 건넨다’고.
그 말을 조용히 받아 안을 줄 아는 이들에게,
이 시집은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