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한 번쯤은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도시는 이런 것이야!’라는 수백 년 묵은 관성을 깨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살아 보지 못한 다른 형태의 도시를 그려 보기도 한다.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무작정 실행에 옮긴 더 라인이 그런 예다. 화려한 이미지, 천문학적인 자본력, 혁명적인 신기술이 총동원되고 있다. 이 책 역시 새로운 도시를 상상한다.
하지만 방향은 다르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만한 도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주제다. 이미지, 자본력, 신기술을 앞세운 현대 도시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 어쩌면 까마득한 태곳적 이야기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를 정의라는 말을 화두로 삼고 출발한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이상은 도쿄를 방문하고 적잖이 실망한 나머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달그락 소리를 내며 긴자거리를 걷는 이들을 카인의 말예(末裔)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이미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자들”이라고 적었다. 무슨 별을 잊어버렸단 말일까? 화려한 문명의 도시를 만들어 온 도정에서 잊어버린 별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별 중 하나가 정의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시의 풍경은 진부한 일상의 궤적과 편견을 뒤흔들어 틈새로 올라오는 세상의 신비로운 이면을 살포시 드러낸다. 파편처럼 유리되었던 공간과 공간이 이어지며, 무엇보다도 폐쇄회로 속을 반복적으로 오가느라 단절되었던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된다. 정의라는 화두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이런 생동감 넘치는 일상을 품은 도시의 청사진이 그려지길 기대해 본다.“
-들어가며, ‘정의, 잊어버린 가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