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의 강, 나의 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견디며 써내려간 황규관의 시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깊이 울린다. 시인은 폐허가 된 세계에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담한 고통과 침묵을 외면하지 않으며, 가난과 허무 속에서 천천히 낡아가는 그림자들에게 연대의 언어를 건넨다. “비루한 비굴을 이고 사는”(「동백 씨」) 존재, “주머니에는 먼지만 가득”하고 “가진 거라고는 가만히 내다보는/저물녘뿐”(「밭 한뙈기」)인 삶은 그의 시의 출발점이다. “건널 수 없는 벌건 물길”(「마지막 강」) 앞에 먼저 가서 선 시인은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흐르지 않는 강」) 자문한다. “가난과 기도와 투쟁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지나, “딱 오늘 하루만 살자”(「오늘 하루만」)는 절박하고도 단단한 다짐을 시로 끌어안는다.
그의 시선은 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본의 폭력, 인간의 존엄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꿰뚫는다. 잊을 만하면 일터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이제 더는/앞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뒤로 걷는 길」)고 고백하면서도, 그는 끝내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다. 차오르는 슬픔을 외면하기보다, “새까만 슬픔을 노란 꽃잎으로/바꾸는 연금술”(「불타는 밀밭」)을 믿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다. 절망 속에서도 시인은 “숨어 있는 길을 찾으라는/아픈 채찍”(「무서운 말씀」)을 기꺼이 감내한다. 그리고 “매번 실패하는 사랑도/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때가 차면」)는 믿음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향해 앞장서 나아간다.
기도와 투쟁으로 빚은 찬연한 시의 형상
멈추지 않기 위해 끝까지 되묻는 시인의 발걸음
이번 시집에서 특히 ‘동학(東學)’ 연작시 다섯편을 주목할 만하다. “이 지독한 곳”(「저녁노을 2」)을 넘어서기 위해 분투해온 시인은 마침내 ‘동학’에 다다랐다. 이 연작시는 “혁명에는 언어가 필요하지/과거를 만난 미래의 언어/죽지 않고 미래의 문을 두드리는 과거의 언어”(「장시」)라는 시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역사를 대어보는”(「매미가 운다」) ‘혁명의 언어’로 읽힌다. 시인은 “모시고/살리고/가꾸고/절하고/꿈꾸”(「포고문」)는 ‘동학’의 사상과 정신을 단순히 과거의 혁명 신화로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 오늘의 삶과 연결하여 “지금도 무너지는 사람과 베어지는 나무와/심지어 파헤쳐지는 무덤”(「무서운 말씀」)이 생겨나는 현실을 냉철히 돌아보게 하는 재료로 삼는다. 동학이 단지 과거의 역사적 운동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섬겨야 할 삶의 태도임을 일깨우며 “비참의 흉부”(「도시락 건네주러 가는 길」)가 점점 어두워져가는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견딘 자만이 도달하는 새로운 희망의 시를 노래한다.
이러한 태도는 시 전반에 깃든 결연한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기도의 뿌리를 믿지 않는 시대”(「가을의 영혼」)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시인은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도, 절망에 주저앉지도 않는다. “폐허에서 기적은 시작된다”(「여기는 공터」)는 믿음을 품고 “쓰러진 함성과 노래를 누더기 삼아” 무너진 자리와 지워진 존재들 속에서 다시 걸어갈 길을 찾는다. “이제는 앞을 보며 뒤로 걸어야지”(「뒤로 걷는 길」)라는 선언처럼, 그의 걸음은 과거를 반성하고 되짚는 끈질긴 실천이자 퇴행이 아닌 참된 전진이다. 이것은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는 다짐이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존재만이 품을 수 있는 내밀한 긍지다. 그렇게 황규관의 시는 바닥을 치고도 굽이쳐 흐르는 강처럼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묵묵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