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도, 가난도, 시대의 격랑도 꺾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 흐르는 강물처럼, 묵묵히 이어지는 삶의 서사를 따라가다
- 『남강 1』- 우리 모두의 가족 이야기
김계중 작가의 장편소설 『남강 1』은 전쟁과 분단, 가난과 산업화를 거쳐 온 한국 현대사의 격류 속에서 두 집안-철수 가족과 말숙 가족-의 삶을 중심축으로 서사를 펼쳐 나간다.
일본에서 태어나 조국으로 돌아온 철수는 낯선 언어와 문화, 차가운 시선 속에서 차별과 외로움을 견디며 자라난다. 생계를 책임진 것은 철수의 할머니였다. 손수레를 끌고 생선을 파는 그녀의 고단한 생은, 가족을 먹이고 지켜낸 시대의 어머니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장이 된 철수는 전쟁과 가난, 동생 만수의 반복된 일탈 속에서도 끝까지 가족을 책임지려 애쓴다. 양파 농사, 토마토 농사, 나중에는 방앗간까지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시도하는 모습에서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았던 당시의 궁핍한 생활상이 드러난다.
한편 말숙의 가족은 기술자였던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지역 유지로 군림했지만, 전쟁의 참화와 정치적 이념의 소용돌이 앞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좌익 활동에 가담한 말숙의 큰아버지는 실종되고, 부유했던 집안은 약탈과 피난을 거치며 점점 피폐해진다. 그러나 말숙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무너진 집을 정리하고 다시 논에 모를 심는 그들의 모습은 “삶은 폭풍 속에서도 자라난다”는 소설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철수와 말숙 세대의 다음 세대들이 중심 무대로 등장하며,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대, 가족과 개인의 가치가 충돌하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산업화 시기를 지나며 오토바이와 경운기가 등장하고,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새마을 운동이 배경으로 스며들며, 시대의 변화는 서서히 개인의 삶에 파고든다. 철수의 아들 만석과 말숙의 성장 이야기는 전쟁 이후 복구와 부흥기를 살아간 세대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특히 말숙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짝 봉헌과의 순수한 교감이 그려지는 장면은, 거대한 시대의 서사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구체적이고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고통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회복하는지를 작가는 세심하고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남강 1』은 특정 인물의 영웅담이 아닌, 평범한 이웃들의 역사이다. 이 소설은 거대한 사건보다 그것을 견뎌낸 사람들의 내면과 일상을 주목하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흔적과 민초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기록한다. 세대를 잇는 가족 간의 책임, 갈등, 사랑, 그리고 묵묵한 생의 지속은 우리 모두가 지나온 삶의 서사이기도 하다. 시대는 변해도 삶은 계속되고, 『남강 1』은 그 흐름의 깊은 강줄기를 따라가며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