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고 굴러 기어코 눈사람들이”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곳, 곧 사회적 공간이 광장이라면 저마다가 저마다의 사연을 고이 간직하는 곳, 곧 개인적 공간은 밀실일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이 말하는 것처럼. 밀실에서 나와 광장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곧 메아리가 되어 울려 펴진다. 또 그 메아리는 다시 광장에서 나와는 또 다른 밀실로 전이된다. 그러면서 밀실과 광장은 상호 호흡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네 등은 내 눈빛을 싣고 간다“
우리는 사람의 뒷모습을 최후까지 기억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등을 보인 적이 얼마나 있는가. 누군가가 보기에 그의 등은 굉장히 무겁고도 쓸쓸해 보일 수 있다. 그 뒷모습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거나, 그 뒷모습에 말을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위 작품은 그러한 말걸기, 따라 걷기의 시도들이다. 절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 본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때때론 해보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그의 시선으로 세계가 자연스레 읽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시선에서 무엇이 보일지, 무엇을 느낄지 궁금해 적어내려간 작품이다. 타인을 읽어보자, 타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보자고.
”14학번견학일기“
때때로 국가 이성은 비정상적으로 일반 사람들을 인도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4년의 각종 참사를 마주하며 큰 좌절감을 느꼈지만 그 크나큰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어진 작품이다. 자신의 소신을 양보하거나 유보해야 하는 청년들, 사회적 참사에 어떻게 연대를 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각자가 가진 고통에, 각자가 마주한 고통에 서로 응답해 나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활짝 나은 쪽으로 열리지 않을지 저자는 생각한다.
”아들아 우리의 끝은 사막인가보다“
기후 위기로 아마존의 숲이 발가벗겨지고 있듯, 북극의 빙하가 얼어 내리고 있듯, 몽골 초원도 위험한 상황이다. 이는 유목민 세대 간 계승과 단절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부모 세대가 바라보는 자녀 세대는 기후 위기 뿐만 아니라 도시 과밀화, 동식물 공존 등 여러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의식과 제례 등 계승해야 할 문제도 물론 많지만, 단절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걱정하면서도 다독이는, 공존하는 두 마음이 곧 한 편의 노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려진 작품이다.
”다시“
모두를 겨누지 않지만 누구를 겨누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출발선상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레이스를 펼치지만, 그 끝이 어떤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순간을 즐거이 누리기 때문이 아닐까. 손등에 도장이 없을 때도 있겠지만, 한 챕터, 두 챕터를 끝맺었다는 만족감을 사람마다 누리지 않으련가.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조용한 박수 몇 번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지치지 않고, 서로는 서로를 견디며 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한 내딛음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개인과 사회가 이뤄질 것이라 저자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