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이어서)
박종현 (팝 음악가 〈생각의 여름〉, 예술평론가)
이 책은 창작, 창작성, 창작자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글을 시작하면서 창작자를 좁은 의미의 예술-장르 행위자에 국한하지 않고 “경험의 저자”라는 개념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필연적으로 삶이라는 경험 속에 ‘있는’ 모두가 창작자라는 것은 아니다. 저자 즉 ‘쓰고 짓는’ 사람이라는 말은 무겁다. 세계에 있는 일이 곧 세계를 짓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있기의 특수한 한 양태, 혹은 있기를 넘어서는 있기로서의 짓기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지난함에 대한 책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연결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한국어에서 쓰기와 연결하기는 둘다 ‘짓다’라는 동사 안에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앞에 적었듯, 있는 일과 짓는 일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있는 것만으로는 지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연결짓기’는 그저 닿은 채 있는 것을 넘어서기 위한 어떤 애씀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닿아있기를 넘어서는 닿기로서의 연결을 창작의 지향으로 선택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지난함에 대한 책이다.
창작을 통한 연결을 말하는 이 책은, 그 연결이 애씀을 요하는 것인 만큼 그 애씀의 부재 혹은 헛된 애씀으로 인해 연결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를 거듭 이야기한다. 칼 융의 “심층의 정신”과 “시대의 정신”이라는 개념틀을 빌려와, 저자는 “시대”에 휩쓸려 심층의 나, “태곳적의 나”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인 창작자의 본원적 위태로움을 끊임없이 경계하려고 한다. 시대가 부과하는 정체성과 정치성, 정상성과 저항성, 수용과 배제 같은 이념-논리의 다발들에, 또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인정과 욕망의 자기외(外)적 “시스템” 속 좌표들에 자기 마음과 행위의 의미를 통째 붙이거나 아예 자기 자체를 그와 동일시함으로써 심층의 나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삶이 창작에게 그리고 창작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공허하거나 위험한지 말하고자 한다. 그러한 시스템 위에 혹은 시스템을 향하며 있을 때 종이와 무대 위에 적히는 ‘나’는 점차 나로부터 떨어지고 멀어진 “자기지식”의 이미지에 불과해진다고, 따라서 세상의 여러 ‘나’들이 저자/연행자로서 독자/관객으로서 혹은 둘 다로서 심층의 차원에서 만나기를 희구하는 종류의 예술을 통한 연결체와는 점점 무관해지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