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덕 시인의 시집 『우리들의 길』은 팔순의 시인이 늦은 삶의 반환점에서 써내려간 일상의 기록이자 공동체적 삶의 윤곽을 그리는 시적 자서전이다. 이 시집은 평범한 노년의 삶과 그 안에 깃든 감정, 기억, 공동체 의식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시인은 “이야기처럼 일기처럼” 썼다고 고백하며, 이러한 말은 시의 형식과 정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세월의 층위를 따라가며, 한 사람의 생애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쌓아간다.
『우리들의 길』은 어느 한 노인의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어머니, 이웃, 또 다른 미래의 우리 자신이 있다. 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세월의 소리를 담아 두고 함께 기억하게 만든다. 이재덕 시인의 시는, 그래서 작고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 임창연 시인
삶의 기록으로서의 詩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이재덕 시인의 시집 『우리들의 길』은 팔순의 시인이 늦은 삶의 반환점에서 써내려간 일상의 기록이자 공동체적 삶의 윤곽을 그리는 시적 자서전이다. 이 시집은 평범한 노년의 삶과 그 안에 깃든 감정, 기억, 공동체 의식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시인은 “이야기처럼 일기처럼” 썼다고 고백하며, 이러한 말은 시의 형식과 정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세월의 층위를 따라가며, 한 사람의 생애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쌓아간다. 특히 1부와 2부는 농담, 할머니들, 장터, 임항선 등의 소재를 통해 한국 농촌과 중소도시의 노년층 삶을 정감 있게 형상화한다.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고스란히 시어로 옮기며 꾸밈없는 표현을 통해 진실한 감정을 전달한다.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소원」, 「입덧」, 「어머니·2」 등에서는 어머니가 단지 부모가 아닌, 시대의 짐을 감내한 존재로 등장한다. 단순히 찬미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고, 자식들의 무관심, 시대 변화에 따른 모순, 자식과의 감정적 거리 등 복잡한 층위를 보여준다. 이는 시인이 단지 회고나 그리움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시간의 윤회를 통찰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항선」, 「연애다리」, 「산책」, 「가을 나들이」 같은 시들은 장소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축적된 시적 공간으로 만든다. 시인이 살아온 도시의 골목, 연못, 벤치 등은 사랑과 상실, 회한이 깃든 상징적 장소가 된다. 그 공간 속에서 시인은 고독과 화해, 관계와 기억을 천천히 되짚는다.
또한 『우리들의 길』은 유머와 풍자를 통해 노년의 현실을 말한다. 「자존심」, 「효자」, 「혼자 산다」, 「똥파리」 같은 시에서는 노년이 사회로부터 얼마나 고립되고 방치되는지를, 쓸쓸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린다. 시인은 이를 개탄하지 않고, 구수한 입말과 너스레로 풀어내며 오히려 삶의 유연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우리들의 이야기」, 「그게 아닌데」, 「오늘은 좋은 날」, 「노인당」, 「시행착오」 등에서 드러나듯, 이 시집은 공동체적 서사로 이어진다. 시인은 각자의 기억과 체험이 겹치고 중첩되며 하나의 인류학적 문서처럼 우리 사회의 한 세대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4부의 제목인 「아직도 한창이다」는 시인의 태도를 함축한다. 노년은 종결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이며,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고 글을 쓰고 기억하는 존재로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선언이다.
『우리들의 길』은 어느 한 노인의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어머니, 이웃, 또 다른 미래의 우리 자신이 있다. 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세월의 소리를 담아 두고 함께 기억하게 만든다. 이재덕 시인의 시는, 그래서 작고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