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극우에 빠졌습니다”
SNS를 휩쓴 한 엄마의 고백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폭도들은 법원을 습격한 뒤 점거해 청사 건물과 시설을 파괴했고 경찰과 민간인, 기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이 폭도 무리에는 10대도 포함되어 있어 깊은 우려를 낳았다. 불행하게도, 청소년층의 극단주의적 사상과 행동은 단지 어느 한두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 10~20대 남성 사용자들이 주축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대선 TV 토론 중 여성혐오 표현을 여과 없이 뱉은 한 후보에 대해 ‘맞는 말 했다’며 찬양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학교 교실에서는 ‘페미 박멸’ ‘역시 흑형’ ‘너도 게이냐’ 등 소수자 차별 및 혐오 발언이 일상적 밈(meme)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하에 어릴 적부터 노출된 세대를 자칭하는 ‘MH세대’라는 표현까지 통용되는 실정이다.
서부지법 폭동 다음 날, 서울교육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권정민 교수는 자신의 SNS에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라는 글을 올리며 청소년 극우화의 현실을 공론화했고, 이 글은 온라인상에서 곧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보다 더 잘 교육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정말 순식간에 극우 유튜브에 빠지게 되었”(6면)고 “고등학생인 우리 아들 주변의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이”(8면) 극우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은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앞날을 우려하는 시민들에게 쏟아지는 공감을 얻으며 무려 1,400여회의 공유를 기록했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 가족을 극단주의로부터 구출해 오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 역시 빗발쳤다. 신간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는 독자들의 간절한 문의에 대한 권정민 교수의 살뜰하고도 진심 어린 답변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아이가
혐오와 극단주의에 빠져든다
저자는 아이들을 혐오와 극단주의에 빠져들게 하는 주된 요소로 유튜브 및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또래문화에 취약한 환경을 지목한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욕설 표현”(27면)을 흔한 농담처럼 사용한다든지 “근육질의 유튜버가 몸 자랑을 하면서 ‘남자는 자고로 이래야 한다, 여성은 저래야 한다’라는 식의 성적 편견을 조장하는 경우”(27면)는 오늘날 너무나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남성성 숭배, 독재 및 계엄 미화, 반페미니즘, 소수자 비하 성향을 띠는 혐오 표현들은 극우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서 ‘쿨하고 재미 있는 밈’으로 포장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수익 창출을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더 빈번하게 노출하고, 아이들은 이를 자연스레 내면화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혐오적인 발언이 튀어나와도 “친구들과의 관계가 망가질까봐,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33면)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극단주의적 언행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상적인 문화’로 수용하게 된다.
청소년이 극우화되어가는 이 모든 과정의 근저에는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의 부재’가 깔려 있다. 저자는 “정답 맞히기 게임에 불과”(22면)한 입시 중심의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지적하며 생각할 겨를,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교육 풍토 속에서 아이들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정해진 정답을 쫓는 데만 익숙해진 나머지 유튜브나 친구들의 극단주의적 주장에도 ‘그게 정말 맞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라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콘텐츠가 범람하고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 저자는 ‘비판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질문할 줄 알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이는 길을 잃지 않”(101면)는다는 교육학자로서의 통찰을 호소력 짙게 전한다.
생생한 경험과 검증된 지식에서 길어낸
아이와의 건강한 대화를 되찾는 방법
유튜브가 극우 사상을 전파하는 통로가 되고 있지만, 저자는 “그렇다고 오늘날 유튜브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84면)고 현실을 인정한다. 그 대신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필터”(84면), 즉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줌으로써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사실관계가 맞는지, 논리적 오류는 없는지 등을 아이가 손수 헤아릴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을 권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안은 ‘대화와 토론’이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솔한 대화와 토론은 낯설고 멋쩍다. 권정민 교수는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온’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에서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대화법을 상세히 나눈다.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극단주의적 주장을 내뱉는다면 함께 인터넷을 찾아보며 팩트 체크(fact check)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오해를 예상외로 쉽게 해소할 수 있다. 혐오적 사상에 깊이 빠져 있다면 ① 일단 들어보고 ② 아이의 관점을 공감해주고 ③ 사안을 주변의 이야기로 연결하고 ④ 새로운 정보를 서서히 소개하는 4단계 토론법에 입각해 여러차례 대화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세상을 보는 아이의 시야를 차차 넓혀줄 수 있다.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아이들의 관심사를 포착해 공감력 길러주기, 뉴스를 함께 보며 공분과 관용 가르치기 등 일상에서 자녀와의 소통을 수월하게 꽃피우는 팁들도 무척이나 유용하다.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한가지 꼽자면 아이와 함께 대화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53면)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와의 대화에는 정해진 정답도, 예정된 범위도 없다. 사랑과 신뢰의 관계 안에서 주제를 막론해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전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다른 이의 처지를 공감하는 경험이 쌓이고 쌓일 때 비로소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그리고 이 생각하는 힘은 아이들의 마음과 한국사회에 퍼진 극단주의를 막아내는 최전선의 방책이자 “민주주의의 뿌리”(83면)가 된다. 변화는 “거대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나누는 아주 작은 대화와 질문에서 출발”(68면)한다. 혐오와 극단주의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용기, 생각하고 질문하고 대화할 줄 아는 지혜,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민성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지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