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의 철학사냥』은 철학의 고전적인 접근을 탈피하여, 철학을 삶과 사회에 실질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저자 정연섭은 오랜 기간 과학기술 현장에서 일해온 공학자로, 말년이 되어 철학에 눈을 돌렸다. 그가 만들어 낸 ‘크로’라는 인물은 우주로 납치되어 ‘지구 철학의 정리’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외계에서 철학자들과 면담하며 철학사의 전 과정을 다시 써 내려간다. 이는 단순한 철학사의 요약이 아니라, 인류 지성의 발전 과정을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 구조인 "나누리틀"을 통해 통합적으로 재조명하는 여정이다.
책의 전개는 철학사적 인물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시대와 문명, 과학기술과 예술, 종교와 정치의 교차점에서 철학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등장하고 전개되었는지를 탐색한다. 철학자가 사유한 배경과 시대 맥락을 살피며, 철학이 어떻게 사회 제도, 인간 행동, 감정, 언어, 권력과 엮였는지를 짚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철학을 ‘죽은 지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나아가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철학적 사유를 돕기 위한 도구로 ‘나누리틀’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이다. 이는 주체(나)와 환경(세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모델화한 틀로, 철학이 삶에 실질적인 통찰을 주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요건-미래 예측력, 공동체적 유익, 환경 보호, 위협 감소, 감동과 흥미 제공-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과학기술이 지닌 분석적 힘과 철학의 해석적 깊이를 통합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크로의 철학사냥』은 철학사를 어렵고 딱딱한 학문으로 여기던 독자들에게 철학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철학이 더 이상 삶과 동떨어진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도전이자 행복을 향한 여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철학 초심자뿐 아니라 새로운 철학적 시각을 원하는 독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