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시인들’을 역사에 새긴 결정적 에세이
시 문학의 혁명을 이끌다
베를렌은 1883년부터 문학 잡지 『뤼테스Lutèce』에 『저주받은 시인들』을 연재하였습니다. 베를렌이 자신의 문학적 동지들인 트리스탕 코르비에르,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 말라르메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그들에 대한 설명,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담아 쓰여진 이 원고들은 1884년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만들어져 출간되었습니다. 이 최초의 『저주받은 시인들』은 세 명의 시인만을 다뤘기에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소량으로 출간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강력한 생명력을 잃지 않았으며 어둠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들을 세상에 각인시켰습니다.
『저주받은 시인들』의 생명력은 4년이 지난 1888년에 발모르, 릴라당, 가엾은 를리앙(폴 베를렌의 가명)이라는 세 명의 시인과 파리에서 활동하던 에스파냐 출신의 삽화가 겸 디자이너 마누엘 루케가 그린 시인들의 초상화 6점을 더하여 개정 증보판으로 만들어져 재출간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이후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명칭은 새로운 문학 세계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베를렌과 그의 친구들을 영원히 지칭하는 명칭, 그리고 미래의 모든 탁월하지만 인정받지 못한 모든 작가들에게 부여될 영광으로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상징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정의한 책
불멸이 된 작가들에게 바쳐진 찬가
베를렌이 이 책에서 소개한 시인들은 당시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저주받은”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를렌은 그들의 작품들을 전문 혹은 부분 발췌로 소개하며 그들의 탁월성을 드러내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대중의 이해를 받지 못하지만 문학의 절대적 가치를 위해 치열한 문학 세계를 추구하던 동지들에 대한 찬사이자 대중이 그들을 이해하게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책은 베를렌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드러내는 한 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는 다정하면서도 가혹하고 이기적이면서도 호혜적이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성장기, 파리 코뮌에의 참여와 도피 생활, 사랑스러운 아내와 매혹적인 랭보 사이에서의 방황과 수감, 가톨릭으로의 귀의, 자신이 몸 담은 시문학 장르에 대한 전적인 애정, 생애 내내 발견되는 무절제한 정서와 폭력성, 그리고 우유부단함과 무책임함 등등은 베를렌이란 인물 자체를 복잡하면서도 기이한 인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이뤄낸 그의 문학적 성취는 말년에 그를 ‘시인들의 왕’으로 불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난해한 인간이자 경멸스럽지만 탁월했던 시인 베를렌의 선택, 그리고 베를렌이 선택한 작가들의 길이 옳았음은 역사가 인정한 그들이 함께 이뤄낸 예술성과 지대한 영향력으로 증명됩니다. 세계 문학사를 바꾼 상징주의 문학 운동의 태동기, 그 치열한 현상을 이끈 당사자였던 베를렌이 만들어 낸 역사적 현현이 담긴 책을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