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는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 가내에서 시행하는 예식의 제도와 절차를 간명하게 제시한 저작이다. 여러 종류의 『가례』 관련 저술들이 등장하였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이 큰 저작으로 구준(丘濬)(1420~1495)의 『가례의절(家禮儀節)』(1474)이 꼽힌다.
구준은 1469년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1473년까지 상을 치르고 이후 1474년 『가례의절』을 완성하여 간행하였다. 『가례의 절』은 『가례』의 예의 규정을 구체적으로 절차화함으로써 『가례』의 시행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가례』 실천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다.
『가례의절』은 『가례』가 주희의 저작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한 내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준은 『가례』가 미완성작이라거나, 혹은 완성되었으나 주희 생전에 활용되지 못한 저작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라도 애초에 그가 저술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다만 구준은 당시 통용되던 『가례』 판본에 대해서만은 날카롭게 문제제기 한다. 그는 특히 ‘첫 권에 실려 있는 그림들’ 즉 관혼상제 시행과 관련한 각종 사항을 도상화한 그림들이 『가례』의 본문과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이 그림들은 분명 주희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구준은 「가례의절서」에서 예를 지키고 『가례』를 실천하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을 진작시키고 이단을 물리치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기존의 예서가 이해하고 실천하기에 너무 어렵기 때문에 예가 시행되지 못한다고 파악하고, 『가례의절』에서 『가례』의 본주(本註)를 구체적인 시행 절차, 즉 ‘의절(儀節)’로 만들어 사람들이 쉽게 보고 따를 수 있도록 하였다고 말한다. 『가례』는 기본적으로 예의 절목을 간결한 문장으로 명시한 본문(本文)과 그에 대한 보충설명인 본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례의절』은 『가례』의 본문을 그대로 따르면서 본주의 내용을 행례 절차의 형식으로 바꾸어 서술하고 ‘의절’이라고 표기하였다.
‘의절’에는 행례의 절차 및 예 시행에 관련된 제반 사항들이 총괄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가례의절』을 통해 예식을 행할 때 어떠한 동작과 행위를 하고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적합한 문장을 쓰는 방식, 준비해야 하는 기물, 주요 물품의 표준적인 양식 등 실용적 정보를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다.
한편 『가례의절』에서 일정한 의례 단위 뒤에는 ‘여주(餘註)’라는 항목이 이어진다. ‘여주’는 ‘의절’로 변환되고 남은 『가례』의 본주를 따로 모아 놓은 부분인데, ‘여주’에 속한 것은 대부분 예식 절차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내용들로서 주로 관혼상제의 예의와 관련한 일반 원칙, 예속에 대한 기술 혹은 비평이다. 『가례』에서 이러한 내용들은 사마광(司馬光)의 『서의(書儀)』나 정이(程頤)의 견해를 인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주’에는 “사마온공왈(司馬溫公曰)”, “정자왈(程子曰)”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많다.
또한 ‘여주’의 뒤에는 일반적으로 ‘고증(考證)’의 항목이 뒤따른다. ‘고증’은 『가례』의 내용 혹은 구준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경전을 중심으로 근거를 갖추어 놓은 부분이다. ‘고증’에서는 주로 『의례(儀禮)』, 『예기(禮記)』 등 삼례서(三禮書)를 비롯한 경전의 내용과 사마광, 정이, 주희 등의 예설을 나열하고, 이에 대해 정현(鄭玄), 공영달(孔穎達), 가공언(賈公彦) 등의 고례 주석, 후대 학자들의 예설, 명대 당시의 예제와 습속 등을 인용하여 비교하고 있다. 또한 구준은 경전의 내용 및 여러 예설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며 기존의 논의에 비판적으로 참여한다. 권두에 열거된 40여 종의 인용 문헌들은 대부분 ‘고증’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어서, 구준이 문헌을 폭넓게 고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증’은 『가례의절』의 예의 규정과 구준의 입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가례』와 관련된 다양한 쟁점들을 소개한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구준은 『가례의절』에서 『가례』를 상세하게 구체화하고 관혼상제에 관한 실용적, 이론적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였다. 이처럼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가례의절』은 분량이 많고 체제가 복잡하다. 따라서 『가례의절』은 『가례』 실천을 위한 편리한 저술일 뿐만 아니라 가정의례 전반에 관한 포괄적 자료를 담은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_해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