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희정, 오찬호 강력 추천 ***
“웹하드 카르텔, n번방, 사이버레커의 사이버불링, 딥페이크 등을 비롯해 이번 대선까지 이어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성별화된 폭력의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책”
-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 손희정
“비상계엄에 항의하며 어렵게 연 공론장의 틈을 무엇으로 채워야 사회가 진보하는지를 생생하게 풀어내는 책”
- 사회학자 오찬호
흉기 난동부터 서부지법 폭동까지
생생한 동시대성으로 살펴보는 유해한 남성성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 한가운데서 논의를 펼친다는 것이다. 여덟 편의 글 중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지 않은 주제가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저자들의 냉철한 분석과 뚜렷한 문제 제기는 다양한 폭력과 가해의 주축이 되는 남성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장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해 다룬다. 젠더 관점에서 범죄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추지현은 남성성 연구를 개괄하며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한 흉기 난동 사건이 어떻게 남성성과 관련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이 과정에서 그가 소개하는 ‘폭력의 연속선’이라는 관점은 여성을 향한 범죄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의 연결성뿐 아니라 명백한 ‘여성폭력’과 성별을 둘러싼 ‘일상적인’ 실천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더 나아가 이 이론적 자원을 통해 이 장은 이 책의 다음 장들이 다루는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청사진 역할을 한다.
2장에서는 애인이나 아내를 대상으로 폭력을 가하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사건을 다룬다. 이에 대한 제도적 대응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책 연구자 김효정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현황과 심각성, 피해의 특성과 이에 얽힌 사회적 편견을 차례로 설명한다. 또 이 폭력을 다루는 언론과 법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그 근본적인 원인과 구체적인 보완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3장에서는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과 남성 또래 문화 사이의 관계를 짚는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남성 청소년 대상 성교육 활동가인 이한은 교육 현장에서 보고 들은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단순히 지인을 이용해 ‘음란물’을 만들고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닌, 그것을 용인케 하는 구조적 인식을 꼬집는다.
4장의 주제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콘텐츠 소재로 삼아 돈을 버는 사이버레커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유호정은 사이버레커가 자생할 수 있게 된 주목 경제라는 토대를 분석하며 ‘정의 구현’을 빌미로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사이버레커의 모순을 꼬집는다. 또 피해자를 위해 성폭력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엄벌주의가 사실상 성폭력의 구조적 본질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음을 지적한다.
5장은 성 시장의 새로운 상품이자 합법화된 디지털 성폭력으로서의 ‘벗방’을 분석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했던 인류학 연구자 황유나는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비동의 촬영물을 중심으로 ‘폭주’하던 한국의 불법적 디지털 성폭력이 어떻게 벗방이라는 ‘합법적’ 거래로 전환되었는지 밝힌다. 이를 수행하는 핵심적인 행위자인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의 전략과 벗방 시청자의 욕망을 분석하며,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가 정확히 무엇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짚는다.
6장에서는 에펨코리아와 디시인사이드 등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어진 ‘집게 손’ 논란과 ‘페미 사냥’ 사건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안티페미니즘 운동과 그 전략을 실증한다. 젠더 담론의 역사를 탐구하는 지성사 연구자 이우창은 커뮤니티에 작성된 글을 촘촘히 분석함으로써 온라인 커뮤니티에 ‘안티페미니즘 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논하며, 어떻게 피해의식과 음모론적 세계관을 가진 남성성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7장은 제도권 정치가 청년 남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 어떻게 여성혐오와 ‘짤’이라는 형식을 이용했는지 논의한다.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에서 글을 쓰는 여성학 연구자 이리예는 한국 온라인 문화 초기부터 자리 잡은 ‘짤방’ 문화가 어떻게 공감의 정서를 촉구하는 매개체가 되어왔는지, 그를 통해 어떻게 남성들의 ‘루저 감성’과 ‘된장녀, 김치녀’로 대표되는 여성혐오 정서가 재생산돼왔는지 밝힌다. 또 20대 대통령 후보 시절 윤석열과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의 전략을 분석하며 제도 정치가 여성혐오와 짤을 이용해 만들어낸 혐오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8장은 윤석열의 12.3 계엄 이후 급속도로 극우화된 청년 남성을 진단한다. 여성, 정치, 민주주의의 연결을 고민하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우파에 대한 개념적 분류와 함께 한국 우파의 특수성과 계보를 추적하고, 지금 청년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극우화의 경로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극우가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제와 폭력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같고 다른 남성성들의 지형도를 그리다
이 책은 또한 서로 다른 남성성들의 연계를 담고자 시도한다. 이 책의 여덟 장에서 그리고 있는 남성성은 서로 닮았지만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가령 자신의 ‘찌질함’을 전시하고 희화화하는 남성성과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폭행하는 남성성, ‘힘이 약한’ 여성을 보호하려는 남성성은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남성성들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장에서는 ‘폭력의 연속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남성들이 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어떻게 연속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설명하며, 이 책이 다루는 현상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린다. 또한 온라인에 만연한 ‘루저 감성’과 피해의식(6ㆍ7장)이 어떻게 ‘살인 예고’와 ‘칼부림’을 부추기는지(1장), 흉기 난동 사건을 추동하는 동기로서의 ‘주변화된 남성성’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가해자의 동기와 얼마나 유사한지(2장), 딥페이크 성범죄(3장)와 사이버레커(4장), 벗방(5장)은 어떤 남성문화와 여성혐오적 구조를 공유하는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음모론적 남성성(6장)은 어떻게 제도 정치로 흡수되는지(7장), 그것은 또 어떻게 현실의 세력화와 폭력으로 이어지는지(8장)를 보여준다.
이에 더해 각 장의 마지막에는 그 장의 주제를 다루는 또 다른 책이나 영화 등을 소개한 ‘더 찾아볼 자료’를 수록했다. 해당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독자들은 이 책을 그 자체로 ‘남성성 논의의 지도’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 남성성의 다양한 세부 주제를 접하고, 그 중 더 파고들어 알고 싶은 주제들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새로운 남성성을 기다리며
《폭주하는 남성성》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현재를 위한 책이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쉬지 않고 벌어진 폭력과 차별, 혐오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음을 고하는 책이기도 하다. 불과 한두 해 전 혹은 고작 몇 달 전에 발생해 우리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사례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어떠한 남성성을 끝내고 어떠한 남성성을 새로 찾아야 하는지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윤석열의 탄핵이 인용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 이준석이 얼마나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인지 대선을 통해 만천하에 각인된 지금, 이 두 정치인과 남성성을 가장 확실하게 다루고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폭주하는 남성성》을 바로 지금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