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쇠처럼 영혼까지 파고드는 주홍 글자 ‘A’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낙인의 의미를 변화시킨 고통과 구원의 드라마
문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나의 삶과 세계를 확장하는 법,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7: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일곱 번째 권으로 출간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에서 도슨트 권용선은 잘못된 사랑의 결과로 가슴에 주홍 글자 ‘A’를 달고 살아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다. 17세기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도덕률과 여성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간통의 낙인을 강인함과 숭고함의 상징으로 변화시켜 간 헤스터 프린이란 여성을 통해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그로 인한 다양한 갈등 양상을 읽어 낼 수 있다.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드러난 봉인되지 않는 ‘A’의 세계는 다른 방식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즉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바라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다가온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하게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하게 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작가와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 문학의 세계가 만드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이 완충지대는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만의 특별한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종종 난관에 빠뜨린다. 그리하여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읽기를 아예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 이를 통해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맞먹는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 고민하는 독자들과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해설이 시작되는 뒤표지를 앞표지처럼 구성하여 해설을 첫 페이지처럼 읽도록 한 것인데, 문학과 맞물려 읽는 철학 혹은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한 것이다.
단죄하고 배제하고 이단시하라
폐쇄적인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낙인 찍기
“내 눈길은 낡은 주홍색 글자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히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고, 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신비한 상징에서 흘러나온 의미가 감성에 미묘하게 전달되었으나, 머리로 분석되는 것은 피하려는 듯했다.” - 작가 서문(2판에 붙여) 51쪽에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는 헤스터 프린이란 여성의 ‘불륜’을 취조하고 단죄하는 재판 장면으로 시작해 그녀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유부녀였던 그녀의 연애 상대가 누구이며, 이를 감추려는 이와 밝히려는 이가 누구인지, 그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그러나 도슨트 권용선의 말처럼, 이 작품은 일반적인 의미의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불륜을 둘러싼 이야기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상과 사회 문제를 읽어 낼 수 있는 다층적인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식민지로 이주한 유럽인들의 삶의 모습, 법과 종교의 경계, 종교적 금욕주의에 의한 자본주의 강화, 과학과 종교의 갈등, 가부장적 가족 제도하에서의 여성 억압 문제 등이 주홍 글자 ‘A’에서 시작되어 배회하고 다시 그 글자로 돌아온다. 카인의 이마에 찍힌 낙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징표를 달고 산 헤스터의 삶은, 단순히 한 여성이 아니라 폐쇄적인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단죄되고 배제되고 이단시된 그 시대의 모든 약자들의 삶을 표현한 고통과 구원의 드라마다.
수치와 죄책감에서 존경과 숭고함으로
주홍 글자가 없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하여
낙인은 죄인이 평생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살라는 표식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간통의 낙인인 주홍 글자 ‘A’의 의미가 서서히 변화한다는 것이다. 도슨트 권용선은 이를 ‘봉인되지 않은 A의 세계’라고 일컫는데, 낙인은 수치와 죄책감에서 고통과 강인함으로, 그리고 종국엔 존경과 숭고함의 상징으로 변화해 간다. 헤스터는 마을(문명)이나 숲(야만) 그 어느 공간에도 속하지 않고 그 ‘사이’에 살면서, 내부에 휩쓸리지도 또 외부로 일탈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살아간다. 그런 다른 삶의 방식을 통해 자유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호손의 『주홍 글자』는 금지를 위반함으로써 수난을 감내해야만 했던 인물들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과 좌절된 희망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삶을 살아 낸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목사의 죽음 이후 마을을 떠났던 헤스터가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히 법과 종교가 허락하지 않는 금지된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로하며, “또한 더 밝은 세상이 오면, 그러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완성되면, 새로운 진리가 드러나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확실한 행복을 보장하는 토대 위에서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가 말할 때, 그 안에는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세상에 관한 기대와 희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도슨트 권용선과 함께 읽는 『주홍 글자』 해설 38쪽에서)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낙인의 의미를 변화시킨 헤스터의 삶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현재 너와 나의 차이를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낙인찍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주홍 글자가 오늘도 누군가에게 찍히고 있지 않은가? 돌연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듯 답의 뒷맛이 씁쓸하지만, 주홍 글자가 없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은 아직 우리에게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