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잃은 소년, 생존을 짊어지다옮긴이가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시절, 15세 소년의 눈을 통해 일제의 탄압 속에서 가난과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다 못해 나고 자란 내 나라 땅에서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기에, 생계의 방편을 찾아 부족한 정보와 지식 속에서도 들려오는 말만 믿고 일본으로 떠나가게 되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삶과 설움을 소박하게 그린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만주사변을 벌이고, 국제연맹을 탙퇴해 국제적으로 고립돼가던 일본은 조선에 대한 탄압을 가중시켜 ‘쌀 증산 운동’이라는 명목 아래 쌀뿐만 아니라 온갖 자원을 착취해 갔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민초들의 고달픈 생활은 일본 신문에도 실릴 정도였다.(1933년 6월 12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그런 곤궁한 처지에도 산골 농촌 어느 집에서나 소소한 위안 삼아 담가먹던 막걸리를 주조법 위반이라는 어거지 주장으로 적발당해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고, 병든 조부모, 어린 동생들, 어머니의 부양을 한몸에 짊어지게 된 15세 소년 순덕이, 불쏘시개로 쓰이는 솔잎을 모아 지게에 짊어지고 안동 읍내 장터로 장사를 하러 다니며 보고 듣는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참담한 현실을 헤쳐나가려는 소년의 솔직하고 반항적이면서도 자긍심이 담긴 시선으로 그려진다.
어언 100년 전, 군국주의 침략의 횡포 속에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가는 처참함과 부당함과 맞서는 민중의 속내를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난이한 이념의 나열이 아닌 누구나 말하며 듣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작가의 심신에 배어서 우러나오는 민초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한국 출판의 취지
생전부터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고 작가의 인품과 성정을 아끼며 친분이 깊었던 분들, 특히 한일의 역사와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고 계신 그분들은 격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참담한 궁지에 몰린 끝에 결국 모국을 떠나 일본 땅으로 떠나와 살 수밖에 없었던 재일동포의 생활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낸 재일동포1세 정승박 작가의 작품 ‘솔잎 장수’가 조국인 한국에서 출판되어, 어른들의 말뿐인 권위와 위선적인 처세술을 혐오하면서도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던 주인공 소년의 꾸밈없는 말과 모습을 통해 재일동포의 존재와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몇개의 용어와 개념으로 나뉘어지고 대변될 수 없는 굴곡된 역사 속에서 살아온 수많은 재일동포1세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 동안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하고 읽으며, 전쟁과 폭력으로 잔혹한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출판의 뜻을 모았다.
작품 서평
본 작품을 직접 평한 것은 아니지만, 마이클 모라스키Michael S. Molasky(1956년-, 미국 출신의 일본문화 연구자, 와세다대학국제학술원 교수), 일본의 전후문학사가 전문인 그가 저명한 작가 15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저서 ‘암시장(暗市)’에서 정승박의 ‘벌거숭이 포로(裸の捕虜)’에 대해 ‘억울하게 체포당한 재일한국인 주인공이 깊은 산속 댐공사장으로 보내져 가혹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의하는 이야기는, 암시장 그 자체는 아니지만 전쟁의 어둠의 이미지가 선연히 느껴지는 출중한 작품이다.’(2015년 11월 8일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라고 평하고 있다.
일본 문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은 재일동포 작가 김달수(金達壽, 작고)는 생전, ‘음, 역시 우리 사람의 정감이 전해진다. 어딘가를 개운하게 씻어주는 것 같다. 정승박 작가의 됨됨이 그대로의 소박한 유머, 고난을 견뎌내야 하는 고달픈 삶 속에서도 어디선가 솔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느껴진다.
강재언(姜在彦, 역사학자, 하나조노(花園)대학교수, 당시 78세, 작고)은 ‘무고한 식민지 백성의 애환, 우리 동포들의 애환을 그려낸 삶의 리얼리티’. ‘나도 식민지가 된 조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 교육을 받은 체험자이지만 가장 감동받은 작품은 ‘솔잎 장수’이다. 독자로서 정승박 작품의 원점은 ‘솔잎 장수’라고 생각해왔다. 식민지시대 조선민족의 삶과 생활을 체험을 통한 필치로 생생하게 담아낸 저항문학이다.(2001년 7월 8일, 오사카 심포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