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철학자, 탁석산
더욱 폭넓고 온전하게,
서양 철학사 2500년을 안내하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부터 분석철학의 대부 콰인까지,
고대 신비주의부터 20세기 에소테리시즘까지…
철학, 이성과 신비 사이에서 길을 묻다
다양한 저서와 매체 활동으로 대중과 함께해 온 철학자 탁석산. 그가 자신의 본령인 철학 공부 반세기를 정리하며, 고대 이후 현대까지 서양 철학 사상의 흐름을 독특한 시선으로 톺아 본 책, 『탁석산의 서양 철학사』를 선보인다. 이 책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이 홀로 걸어온 길이 아닌, 신학·과학·신비주의와의 얽힘과 대립, 공존 속에서 형성해 온 거대한 지적 흐름을 보여 준다. 철학에 도전하는 이를 위한 〈철학 입문서〉이자 〈철학사 맥락 읽기〉 안내서다.
저자는 철학자의 정의를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편, 마술사와 연금술사 등도 정의 안에 포함한다. 18세기 이전까지도 철학은 오컬트와 함께했다. 그러다 계몽주의가 오컬트를 미신으로 낙인찍은 이래 철학은 〈이성 중심〉의 작업으로 영역을 좁히게 된다. 자연스레 이 책은, 서양 철학의 역사를 더 온전하고 풍부하게 이해하려면 철학과 오컬트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전개된다. 또한 저자의 해석을 자제하고 철학자들의 주장과 비판을 맞세움으로써, 독자 스스로 사유의 여정에 나서게 한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이성과 신비의 공생과 공존
서양 철학의 출발점은 이성과 신비의 경계였다. 고대 철학자들, 특히 피타고라스, 플라톤, 스토아학파 등은 형이상학, 영혼, 이데아 같은 주제를 다루며 철학과 신비주의의 경계를 허문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받았다고 했고, 플라톤은 우주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를 상정했다. 플라톤은 철학자이지만, 그의 사상은 이후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신학, 근대 오컬트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비주의적 사유에서 벗어나, 철학을 현실 세계의 탐구로 전환하며 독립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신비와 철학이 맞닿은 전통을 계승했다. 결국 고대 철학은 이성과 신비가 공생하며 진리를 탐구한 시대였다.
중세는 철학과 신학이 결합한 시기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기독교 교리 체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참고했고, 이교의 신비 전통은 가톨릭 체계 안으로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다. 당시 신비주의는 교회 내에서 진지한 검토 대상으로 여겨졌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직관〉과 〈합일〉이다. 아퀴나스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에겐 진리를 숨겨야 한다고 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는 널리 알리지 않고 가급적 감춰야 유지된다고 보았다. 철학은 이런 방식으로 감추어진 지혜를 연구하는 이성과의 경계에서 신비주의와 접점을 형성했다. 이처럼 중세에 철학은 신학 및 신비주의와 〈공생〉과 〈공존〉의 구도를 띠며, 인간 존재의 근원과 신의 본질을 해석하는 공동의 질문에 응답해 나아간다.
르네상스에서 근대까지: 부활, 분리 그리고 반격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거치며 철학은 신학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시기 철학자들은 인간 중심의 사유로 회귀하면서 인간의 능력, 이성, 주체성에 주목했다. 특히 데카르트는 철학의 출발점을 회의에 두며, 외부 세계보다 내면의 사유 주체에서 출발하는 철학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지는 근대 철학자들은 철학의 자율성과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한편 이 시기에는 철학과 오컬트의 〈분리〉가 급격히 진행된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에소테리시즘을 미신으로 규정하며 학문 밖으로 밀어냈고, 야콥 브루커는 철학사를 〈이성의 역사〉로 재정의하며 에소테리시즘과 종교를 배격하려 했다.
이처럼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했지만, 그에 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흄과 칸트 등은 이성의 구조와 한계를 분석했고, 헤겔은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며 철학을 총체적 체계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 후 철학은 실존과 해체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쇼펜하우어는 이성 대신 의지를 강조했고, 니체는 이성과 윤리의 기원을 의심했다. 결국 계몽주의 이후의 철학은 이성의 승리를 선언하는 동시에, 이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성찰로 전환되어 갔다. 자기반성으로 전개되며 인간과 세계의 균열을 드러내는 성찰의 장이 되었고, 이는 현대 철학의 기초를 형성한다.
현대 철학: 다시, 공존의 실험
20세기 이후 현대 철학은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된다.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후설, 하이데거, 가다머, 리쾨르, 푸코, 데리다 등. 이들은 현상학, 해석학,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등의 방법으로 이성 중심의 체계를 의심하고, 언어, 권력, 존재 등의 문제를 통해 철학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했다. 이 시기 에소테리시즘은 다시 학문 세계로 복귀하고, 철학과 에소테리시즘은 다시금 접점을 찾는다. 현대 오컬트는 신지학, 연금술, 점성술, 마법 등의 전통을 이으며, 일부 대학에는 에소테리시즘 연구 학과도 개설되었다.
한편 콰인과 분석철학자들처럼 경험에 근거한 철학을 강조하며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도 있지만, 후기 현대 철학은 다시 이성과 감성, 신비와 과학, 사유와 직관이 얽힌 지적 지형을 복원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런 현대 철학을 〈다시 공존〉의 시대로 분석한다. 철학, 신비주의, 종교, 과학이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재구성되며, 앞선 근대 시기의 철저한 분리 이래 다시금 융합을 시도한다. 현대 철학은 이렇게 다양한 흐름 속에서 존재, 인식, 언어, 역사, 윤리 등을 다각도로 사유한다.
서양 철학사 2500년, 그 여정의 친절한 안내자
서양 철학의 역사는 이성뿐 아니라 직관과 통찰, 계시와 신학, 과학과 논증을 넘나들며 형성되어 왔다. 신비주의, 신학/종교, 과학과 관계 맺으며, 늘 〈경계〉 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해 온 것이다. 『탁석산의 서양 철학사』는 이처럼 철학이 논리 체계만이 아니라, 인간이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사용해 온 모든 지적 도구의 총합임을 선명하게 환기해 준다.
철학은 사유의 지도이다. 이 책은 그 지도 위에,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지혜의 길들을 표시한 안내서다. 서양 철학 2500년사에 아로새겨진 지혜의 길들을 더 온전하고 다채롭게 걸어 보고자 하는 탐험가에게, 이 책은 든든한 지도이자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