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살만(MbS)의 사우디 왕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정치 대혁신, 원제: Vision or Mirage_Saudi Arabia at the Crossroads》(35,000원, 인문공간)은 21세기 세계 유일의 절대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정치 메커니즘을 탁월하게 분석한 대중서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1902년 건국부터 현재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의 개혁정책까지 123년간의 통치 전략을 역사적,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사우디 왕국의 건국과 왕위 계승사, 아라비아 사막의 한 오아시스 작은 부족에서 G20 국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깊이 있게 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 교과서 같은 책이다.
미국 외교관이자 저자인 데이빗 런델(David H. Rundell)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던져야 할 첫 질문은 ‘정부가 언제 붕괴될 것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왜 아직 존재하느냐?’였다.”고 질문한다. 민주화 바람이 거센 21세기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절대 왕정을 유지하는지를 묻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국가 건립 △왕위 계승 관리 △이해관계자 간 균형 △유능한 정부 구현 △새로운 도전 대응 등 5개의 주제로 정해 드라마틱하고 재미있게 심층 분석하는 이유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53년 압둘아지즈 국왕 사망 이후 6차례 이상 평화적 권력 이양에 성공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 아랍 국가들이 쿠데타와 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1960년대 사우드 국왕과 파이살 왕세자 간 갈등이 오히려 안정적 왕위 계승 시스템 구축의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현재까지 칼리드-파흐드-압둘라-살만 국왕으로 이어지는 형제 계승의 정권 교체는 큰 혼란 없이 진행돼 왔다.
사우디 정치 안정성의 핵심은 5개 주요 이해관계자 그룹 간 정교한 균형으로 봤다. 전통적 권력 기반인 부족과 와하비 성직자 집단에 상인 계층을 흡수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테크노크라트를 포용하면서 왕족이 조정자 역할을 하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룹별 엘리트가 기득권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왕정에 충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권력 유지의 핵심이었다고 분석했다.
2003-2007년 알카에다의 사우디 내 테러 활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사례를 통해 사우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성직자와 부족, 일반 국민의 지지를 얻어 테러 세력을 고립시킨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사우디 아람코의 독립성 유지, 석유화학 산업 육성, WTO 가입 등을 통해 다른 산유국 대비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앞에는 전례 없는 도전 과제들이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석유의존 경제 경제의 지속가능성 한계, 이란과의 지정학적 갈등, 인구 15%를 차지하는 시아파에 대한 구조적 차별,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욕구 증대 등을 주요 불안 요소로 꼽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어요. 앞으로 10년간 더 억압적이고 불안정한 왕국이 될지, 아니면 더 안정되고 책임감 있는 왕국으로 진화할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셰일 오일 시대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로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중추 역할, 이슬람 성지 메카·메디나 관리, 중동 지역 세력 균형자 및 중개자 기능 등이 제시됐다. 특히 서방 국가들에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긍정적 변화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정책적 과제도 던졌다. 압둘아지즈 국왕부터 현재의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이르기까지 4세대에 걸친 통치 전략의 진화와 현재 진행형인 ‘비전 2030’ 개혁의 성패를 예측할 수 있는 구체적 지표들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빈살만의 미래 마법 같은 레시피도 소개했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탈 석유화와 새로운 산업을 키우고, 젊은 세대의 혁신을 이끄는 계획이 어떻게 글로벌 경제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지를 펼쳐 보인다. 정치적인 분석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가 어떻게 중동의 최강자로 ‘레드 카펫’을 걷는 국가가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과정을 재밌게 풀어냈다. 또 ‘사우디 왕국이 나아가는 길은?’이라는 질문으로 미래에 대한 놀라운 비전도 차분하게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