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건으로서의 음반”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혹은 설레면 버리지 않는다
『아무튼, 레코드』에는 무형의 음악이 유형의 물건에 기록된, 모든 종류의 피지컬 음반과 각 매체의 재생 기기에 대한 성진환의 애호와 기록이 담겨 있다. 그는 음반을 물건 자체로도 좋아한다. 언젠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광풍이 불었을 때 그도 넘치는 물건들을 정리해보려고 시도했다. 집 안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음반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시간과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음반들을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여전히 설렌다면 버리지 않겠다고.
『아무튼, 레코드』에서는 좋아하는 물건인 음반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찰과 성찰이 돋보인다. 두 개의 톱니바퀴가 사이좋게 서로를 이끌거나 기다려주는 모습(카세트테이프)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든가 ‘미래에서 온 외계 물질’을 처음 보고 살짝 충격받은 모습(시디)에서는 빙그레 웃음이 난다. 특히 엘피가 돌아가는 모습에 대한 그의 묘사는 아름답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들려오는 모든 순간 턴테이블의 바늘 끝은 정확히 그 순간의 소리가 새겨진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깊은 밤 산 속에서 무언가를 쫓는 표범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지형을 따라 흔들리며 달린다. 그 흔들림, 그 길의 모양이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원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바늘이, 이환상적인 전체 여정 중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는 언제나 확실하게 보인다. (42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을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실물 음반의 면모가 그의 묘사를 통과해 신선한 환기력을 얻는다. 누군가가 만든 멋진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갈망의 시간이 길러낸 ‘좋은 눈’이다. 『아무튼, 레코드』의 ‘레코드’는 음악을 기록한 장치로서의 음반(record)을 말하기도 하지만 음악을 사랑한 시간과 그 산물인 추억의 기록(record)이기도 하다.
“누군가 음반들을 잔뜩 짊어지고 와서 밤새 음악이 끊기지 않게 틀어주는 기분”
: 쳇 베이커에서 조동익을 지나 클레어오까지
『아무튼, 레코드』는 당연히 읽는 책이다. 그렇다면 듣는 책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음악을 찾아 듣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카세트테이프와 시디, 엘피를 향유하던 시절 자신이 사랑하며 들었던 음악과 뮤지션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제목과 이름들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추억과 에피소드에 연결된 이 리스트들을 스치듯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하나하나 검색하고 들어보게 된다. 그리고 필요한지도 몰랐지만 이미 긴요해지고 만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 작성을 하느라 손길이 바빠진다. 특히 음반 수록곡 사이에 들어가는 간주곡처럼 곳곳에 포진한 “Interlude”는 ‘최근에 잘 산 카세트테이프 몇 개’라든가 ‘매장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추천한 음반’, ‘컴필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믹스테이프’ 등을 통해 플레이 리스트의 향연을 펼친다. 특히 컴필레이션 음반이 지니는 나름의 미덕을 칭찬하면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음반들을 잔뜩 짊어지고 오늘 밤 우리 집에 와서 음악이 끊기지 않게 틀어주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조금만 부지런을 떤다면 『아무튼, 레코드』가 바로 이런 기분을 선사해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직도 음반이 팔리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작가 성진환이 들려주는 대답이기도 하다. 이 대(大)스트리밍의 시대에 굳이 피지컬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고 뜨겁게 퍼져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사랑하는 음악만큼은 조금 번거롭게, 더 정성을 들여 듣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