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봉의 첫 시조집 『나는 나를 열어』는 오늘날 시조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조용하지만 힘 있게 제시한 작품집이다. 이 시집은 정형시조의 틀 안에서 개인적 서정과 현대적 감수성을 진솔하게 울려내며, ‘정직한 감정의 언어’로 독자와 깊은 공명을 이끌어낸다.
표제에서 드러나듯, 『나는 나를 열어』는 단순한 자아 고백을 넘어, 내면의 풍경을 타인과 나누고 감정의 파장을 먼 곳까지 퍼뜨리는 일련의 시적 여정이다. 여기서 ‘나를 연다’는 것은 폐쇄적인 자아로부터 벗어나, ‘너’를 향해 나아가는 다리 놓기이다. 이러한 ‘감정의 다리’는 단지 개인적인 사유에 그치지 않고, 고전과 현대, 나와 너,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징검다리로 기능한다.
이 시조집의 형식적 특징 또한 주목할 만하다. 허인봉은 시조의 정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것을 시대 감각에 맞게 갱신하고 확장해간다. 「뜨개질」, 「계절 서랍」, 「해가 지다」 등의 시조는 그 대표적인 예로, 전통적 리듬감 안에 현대인의 정서, 특히 도시적 고독이나 가족과의 정서적 거리감 등을 섬세하게 새겨 넣는다. 이를 통해 그는 시조를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형식’으로 재해석하며, 시조 문학의 미래적 진화를 모색한다.
허인봉 시의 또 하나의 미학적 강점은 공감적 서정에 있다. 그의 시어는 격렬하거나 과장되지 않다. 오히려 담백한 언어로 독자의 기억을 조용히 두드리며, 잊히고 있던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집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독자의 내면을 비추고 울리는 ‘감응’의 책이 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질문을 품게 된다. “나는 나를 열 수 있는가?”, “나는 너를 부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곧 시조가 던지는 존재론적 사유이며, 이 시집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이기도 하다.
요컨대, 허인봉의 『나는 나를 열어』는 시조 문학의 정형성과 감성의 진실성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잡으며 자신만의 언어를 형성해낸 첫 걸음이다. 향후 이 시인이 어떤 시적 지형을 확장해나갈지 기대가 모아지며, 그의 시조가 우리 시단에 새로운 ‘울림의 공간’을 만들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