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극적인 대립과 갈등 속에서
휴머니티는 어떻게 피어날 수 있는가!
전후 영국의 대표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대표 스릴러
전후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그레이엄 그린의 문학적 위상은 독특하다. 그는 시대를 달리해 몇 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등 오랫동안 문학적 명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문학 세계는 이른바 ‘순수 문학’에 한정되지 않았다. 60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여정에서 그레이엄 그린은 순수 문학과 스릴러를 오가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종교, 인간성 상실, 제3세계 문제 등을 주제 삼아 장르를 넘나들며 벌이는 그린의 문학 여정은 그를 한 세대와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부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스릴러 장르의 문법으로 드러낸 폭력과 거짓의 연쇄, 〈제3의 사나이〉
압도적 허무함과 한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의 은유, 〈정원 아래서〉
〈제3의 사나이〉는 강대국에 점령당한 빈에서 사라진 친구의 비밀을 좇는 어느 형사의 이야기다. 주인공 롤로 마틴스는 친구가 비리에 휘말렸다는 경찰의 주장에 반박하며 쫓고 쫓기는 무채색의 하드보일드 폭력 세계로 진입한다. 폭력으로 점철된 이 황량하고 황폐한 도시에서 사라진 친구를 향한 롤로 마틴스의 우정만이 홀로 빛난다. 그러나 롤로의 우정은 곧 시험에 든다. 그가 사건의 비밀에 가까이 갈수록, 잿빛 도시의 빛깔은 더욱 뿌옇게 변하고 홀로 휩쓸리지 않고자 버티는 그의 의지조차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악의 유혹과 선하게 살려는 인간적 열망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련한 운명을 도드라지게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제3의 사나이〉가 스릴러의 문법으로 황폐한 도시와 그곳을 살아가는 개인의 실존을 다루었다면, 〈정원 아래서〉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인간사의 진리를 다룬 순수 문학 작품이다. 와일디치라는 이름의 어린이가 집 앞마당의 자그마한 호수 밑으로 난 지하 굴을 찾는다. 와일디치는 그 굴에서 기존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점차 그곳에 매료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후 와일디치는 그녀를 찾아 수십 년간 전 세계를 누빈다. 이 과정에서 어느새 그의 젊음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늙고 병든 몸뿐이다. 이 모든 일이 지나간 후, 와일디치는 자신이 지하 굴에서 마주한 것들이 과연 ‘진실’이었는지에 관한 의문을 품는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하나의 은유와도 같은 이 이야기에서, 독자는 현재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것에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압도적 허무감과 한탄을 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의 사나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방향성과 본질을 질문하는 작품인 셈이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한
삶의 진실이라는 그레이엄 그린의 문학 세계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이 고통과 시련을 매개한 경험을 통해서만 진실에 가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진실은 환희, 기쁨, 안락,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이 두 작품에서 그레이엄 그린의 인물들이 늘 홀로 고독하게 진실의 여정을 헤쳐 나가는 것도 삶의 가혹함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 그레이엄 그린은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황량한 도시 속에서, 그와 닮은 삶의 진실을 끌어낸 작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