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위원회 SAT 추천 도서
《뉴스위크》 선정 세계 최고의 책 100선
〈옵서버〉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
피터 박스올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 추천 도서
기발하고 신묘한 착상으로 바다 너머 낯선 세계와
인간사의 진풍경을 경쾌하게 펼쳐내며
영국 사회의 타락과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한 걸작
여행과 탐험을 즐기는 외과 의사이자 항해사인 걸리버는 여러 차례의 항해 중 뜻하지 않은 난파
와 표류를 겪으며 기이한 나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 여행에서 그는 릴리푸트라는 소인국
에 도착한다. 키가 15cm에 불과한 소인들이 사는 이 나라는, 인간 사회의 정치적 편협함과 권
력 다툼을 풍자하는 무대로 그려진다. 그곳에서 거대한 거인으로 취급받는 걸리버는 처음에는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이내 권력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결국 반역자로 몰려 떠나게 된다.
두 번째 여행지는 거인국 브로브딩낙이다. 이곳에서 걸리버는 인간의 손가락만 한 존재로 전락
해 일상적인 사물과 곤충들조차 위협으로 느껴진다. 거인의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이
곳의 왕은 걸리버가 설명하는 유럽의 정치와 전쟁을 야만적으로 여긴다. 걸리버는 다시금 인간
문명의 어리석음을 자각한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그 아래 여러 신비한 나라들을 방문한다. 라퓨타
섬의 주민들은 음악과 수학에만 몰두한 채 현실과 단절되어 있으며, 과학자들은 쓸모없는 실험
과 발명에 집착한다.
네 번째 여정에서 걸리버는 영생인 스트럴드브러그가 사는 나라와 죽은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섬을 지나, 마침내 이성과 도덕성의 상징인 말들이 지배하는 후이늠의 나라에 도달
한다. 그곳에서는 야후라 불리는,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탐욕스럽고 비열한 존재들이 말의 모
습을 한 후이늠의 지배를 받는다. 걸리버는 후이늠 사회의 합리성과 품위에 감명받으며 인간성
과 문명의 본질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는다.
영국의 집으로 돌아온 걸리버는 이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마
치 야후들 같은 인간들 사이에 섞인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그는 결국 말을 벗 삼아 고독하게
살아가며 인간 사회로부터 멀어지기를 선택한다.
“나는 이제 내 여행의 역사를 쓰려고 하네.
상당한 분량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에 관한 것이네.”
런던에서 유명 정치가였던 윌리엄 템플 경의 비서로 일하며 지식과 정치 경험을 쌓은 스위프트
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집안의 전통에 따라 영국 국교의 사제가 되었고, 이후 문학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1704년 《지어낸 이야기》라는 작품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1713년에 더블린의 성
패트릭 대성당의 수석 사제가 되고 이듬해 런던으로 건너가서 당쟁을 조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효성이 없자 그는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그 해 앤 여왕이 사망하고 새로운 왕인 조지 1
세가 즉위해 스위프트가 지지했던 정부는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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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 후에 스위프트는 말을 타고 아일랜드의 여러 지역으로 유람을 떠나는데 이때의
경험이 《걸리버 여행기》를 쓰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무렵 스위프트는 아일랜
드의 정치에도 관여하게 되는데, 1720년대에 영국의 식민 정책을 비난하는 글을 발표하며, 마침
내 일생일대의 대작 《걸리버 여행기》를 집필하기에 이른다. 스위프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
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내 여행의 역사를 쓰려고 하네. 이건 상당한 분량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에 관한 것이네.”
이처럼 스위프트가 현실에서 겪은 정치적 좌절과 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관찰, 풍부한 독서와 유
람 경험이 응축되어 《걸리버 여행기》라는 실험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모험담이자 환상적인 여행기로 읽히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정치 풍자
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18세기 영국 사회의 복잡한 정치 지형
과 당파성, 계몽주의 지식인 계층의 공허한 이론적 논쟁, 제국주의적 팽창과 그 이면의 폭력성,
종교적 위선 등은 네 차례의 기이한 여행 속에 은유와 우화의 형식으로 정교하게 녹아 있다.
소인국 릴리푸트에서는 무의미한 권력 다툼과 정쟁을, 거인국 브로브딩낙에서는 인간 문명의 야
만성과 도덕적 해이를, 라퓨타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지식 추구를 풍자한다. 마지막으
로 당도한 후이늠, 말의 나라에서는 이성과 품위를 지닌 말과 탐욕스럽고 추악한 인간 형상의
야후를 대비시켜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유도한다. 이러한 세계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당시 영국 및 유럽 사회를 정밀하게 모사한 풍자적 거울이며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장치이기도 했다.
“시간이 그의 가치를 입증했다.”_조지 루이스 보르헤스
풍자 문학의 대가 스위프트가 남긴
문명의 위선과 인간 본성의 야만성에 대한 통찰
스위프트는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을 그의 작품 전반에 담아냈다. 당
대의 종교 갈등과 학문적 허영심을 풍자한 작품인 《지어낸 이야기》, 맹목적인 과학 숭배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전통과 신지식의 균형을 강조한 《장갑의 전투》 등 초기 작품에서도 이미 그의 비판
적 시선은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1726년 익명으로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는 문학적 완성도와
사상적 깊이 면에서 스위프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표면적으로는 기이한 나라들을 여행하는 허구의 모험담이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소설 형식을
빌린 정치철학적 풍자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 성찰의 기록이다. 걸리버가 방문하는 각국
은 각기 다른 사회 제도와 인간 군상을 은유적으로 축소해 보여주는 장치이며, 주인공 걸리버는
독자의 시선을 따라 세계를 관찰하고 인식하는 매개자이자, 점차 인간 사회에 환멸을 느끼는 스
위프트 자신의 분신으로 기능한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아동 문학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정치 풍자, 도덕적 반어, 철학적
질문이 정밀하게 얽혀 있다. 조지 오웰이 “평생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읽는 책이며,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이해된다”라고 평한 것처럼, 이 작품은 단일한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층위로 해석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중층의 구조 덕분에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있다. 허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 현실을 반영한 스위프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
긴 《걸리버 여행기》는 허구를 통한 진실의 문학적 가능성을 극대화한 고전이자, 풍자 문학의 정
수로 오늘날까지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