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회피의 대상에서 적극적 사유 대상으로 변모해온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죽음
먼저 서구 지식인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시대별로 일별해 보면, 먼저 헬레니즘 시대까지를 포함해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죽음 담론에서는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 이 두 철학자의 견해가 마치 쌍두마차처럼 이 시대를 대표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하기’란 ‘죽음 연습하기’와 같다고 보았으며,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둘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강조했다. 죽음에 대한 이 두 고전적 견해는 이후 서양 지식계를 압도했는데, 고대 로마의 지식인들 역시 이 두 그리스 철학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그들의 견해를 보완하거나 확장해 나갔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로 오면 죽음에 대한 관점이 종교적, 신학적으로 돌변하는데, 무엇보다 당시 지식인들이 생각한 죽음은 그다지 엄청난 사건도, 결코 두려워할 현상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옥, 연옥, 천국 같은 사후세계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우구스티누스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구원받고 부활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먼저 죽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가들의 특징은 원죄 의식에 입각해 죽음을 하나님이 인간에 내린 일종의 벌로 인식했다는 점, 죽음을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했다는 점, 따라서 죽음이 끝 또는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한 새로운 시작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오면 이러한 서구 지식인들의 죽음관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기독교적 관점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세속적 입장이 첨가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자살이나 안락사를 금기시하던 기독교적 전통을 깨고 고통스러운 환자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른바 안락사 또는 조력 자살을 용인했던 토머스 모어의 죽음관만 보아도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 서구인들의 죽음 담론은 더욱 세속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 출발점에 “죽음아, 뽐내지 마라!”면서 죽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영국 시인 존 던을 저자는 호명한다. 그는 단순히 도발이나 도전 정도를 넘어 죽음을 살해하는 과격성과 급진성까지 보이는데, 이는 더 이상 죽음에 순응하던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의 심성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러한 관점은 세기가 흘러갈수록 더욱 빠르게 변모하는데, 니체에 이르면 “제때에 죽도록 하라”라고 충고하면서 심지어 인간의 죽음을 넘어 신(神)의 죽음을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죽음을 삶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니체 이후의 야스퍼스나 하이데거, 사르트르, 레비나스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나 현상학자들은 죽음의 무화성, 무목적성, 무의미성, 부조리성을 적극 설파한다. 심지어 제프리 고러 같은 학자는 죽음을 섹스와 같은 포르노그래피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즉 성(性)과 죽음은 이름만 달리하는 두 개의 금기이자 신비라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를 묻기보다 이제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
이러한 서구 지식인들의 죽음 담론의 역사적 전개를 바탕으로 저자는 제1부에서 먼저 ‘죽음 이전’을 주제로 다룬다. 이 범주 안에는 죽음에 원인을 제공하는 각종 요소 및 요인 또는 죽기 전에 죽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태도, 그리고 죽기 전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마음가짐 등이 속하는데, 이것들은 결국 ‘삶과 죽음’, ‘질병’, ‘노화’, ‘죽음 수용’ 등 네 개의 핵심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제1장에서 다루는 ‘삶과 죽음’은 사실상 철학의 주제로 시대별 철학자들의 담론을 소개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죽음의 제1원인으로서의 ‘질병’을 다루고 있는데, 페스트, 천연두, 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매독 같은 전염병을 비롯해 20세기의 각종 암, 에이즈, 에볼라 같은 난치병 등이 소개되고 있다. 제3장에서는 ‘노화’ 내지 ‘노년’을 다루고 있는데, 고대의 키케로부터 몽테뉴를 거쳐 현대의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에 이르는 흐름을 살피면서 결국 노년은 희망의 완벽한 결여임을 의미한다고 본다. 제4장에서는 ‘죽음 수용’과 관련, 가장 널리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이른바 ‘죽음 수용의 5단계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미국 정신의학자였던 그녀는 5단계 죽음 수용론을 비롯해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학문적으로 종합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병상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를 접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성찰한 임상 결과를 일종의 의학 보고서 형식의 단행본 『죽음과 죽어감』으로 펴내기도 했다.
제2부에서는 ‘죽음 자체’를 다루고 있는데, 이 범주 안에는 가장 먼저 ‘죽음’ 담론이 포함된다. 더불어 여기서는 죽음의 다양한 종류, 즉 자살, 살인, 사형, 암살, 대량 학살, 낙태, 영유아 살해, 안락사, 존엄사, 개인의 죽음과 인류의 죽음 등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제3장에서는 독특한 죽음 유형인 ‘자살’을 다루고 있다. “실제 아주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인데, 그것은 자살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그리고 독일어권에서 흔히 ‘자유죽음’(Freitod)으로 명명되는 자살에 대해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철학적 견해들이 펼쳐져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죽음 이후’의 여러 주제에 대해 서구 지식인들이 사유하고 펼친 사상들을 톺아보고 있는데, 육체와 분리된 존재로서의 ‘영혼’, 천국과 연옥, 지옥 등을 포함하는 ‘사후세계’와 ‘사후생’, 인류의 꿈과 희망으로서의 ‘불멸과 영생’ 또는 ‘구원과 부활’ 죽음 이후의 의식으로서의 ‘장례와 애도’ 등에 대한 담론들이 주요 탐구 대상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통해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차피 ‘죽음’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기에, 죽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답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