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의 경계에서 피를 흘리는 단어와 이미지들
"글쓰기라는 말에 어울리는 글은 이 이야기를 거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보뱅과 연결되기 위해, 아주 치밀하고 생생하게 그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가 택한 것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보뱅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 그의 삶이 넘치는 생명으로 가득했을 때, 그가 문장 속에 숨겨두었었던 비밀들을 힘껏 벌려 읽는 것이다.” - 김연덕 시인 추천
『마지막 욕망』은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 받은 철필로 손목을 긋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신"과 함께 머물렀던 방. 창밖으로 마로니에 나무가 보이고 태양의 첫말과 비의 첫 슬픔이 전해지던 그곳, ‘고통 없이 천천히 썩어가는 인생으로 들어가지 않고 피할 수 있게 해줄 감춰진 문이나 비밀 계단이 어딘가에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 공간에서. "당신"은 떠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이곳에 남은 것은 당신이 준 ‘철필과 그것으로 베는 죽음’만 있을 뿐. 이후로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의 시간 동안 "나"는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과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홀로 남겨진 방의 온전한 적막 속에서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과 적막의 공간 속에서 때로는 고백처럼 때로는 독백처럼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오히려 개개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은 "블랙베리처럼 내 입술을 짓눌"렀으며, 그들은 뺨과 심장과 입에서 오렌지, 체리, 산딸기 내음을 맞는다. 화자는 "목구멍에서 피어난 눈부시게 창백한 장미"와 함께, "당신 손가락의 잎사귀와 당신 팔과 다리의 나뭇가지" 속에서 "연한 잎맥"으로 자라난다. 꽃과 과일은 화자와 당신 사이를 순환하며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느리게 반복해 나간다. 계절과 기후에 의해 그것들이 죽을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일시적인 죽음마저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현재", "타원형의 영혼"을 화자는 이해하게 된다.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 당신에게 닿기 위한 죽음. 다시 살아나기 위한 죽음. 이제 "나"에게 남은 욕망은 하나뿐이다.
“당신의 색을 걸칠게요. 당신 입안에서 녹을게요. 곧 알게 되겠죠. 구름과 바다, 죽음과 오렌지가 어떤 모습일지, 당신 눈 속에 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이 하늘의 유리창에 단어들을 던지도록, 길을 잃은 단어들을 던져 별똥별을 일으키도록. 당신이 보잘것없는 나무 탁자에 기대고 생생한 꿈에 기대어 글을 쓸 때, 내가 당신 손끝에 있을게요. 내가 당신이 될게요." _본문 중에서
『마지막 욕망』은 보뱅의 문학적 여정의 출발점을 알리는 귀중한 작품이자, 그의 시적 철학이 응축된 보석 같은 텍스트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삶과 사랑, 그리고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이 미공개 원고를 발굴함으로써, 보뱅의 문학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조명하며 독자들에게 그의 초기 목소리를 선사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작가의 죽음이 가까워져서야 눈앞에 다시 나타난 텍스트.『마지막 욕망』에서 우리들은 투명하게 빛나는 보뱅의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잿빛 문장들을, 그러나 "어둡고 가혹한 납빛의 지대" 안에서 발화되기를 기다리며 오래 숨어 있던 "가벼움과 환희의 씨앗"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