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망해도 이 책만은 버리지 말아줘.
정말 재미있고 쓸모 있을 거야.”
3,000권의 책으로 안방을 서재로 만든 탐독가,
다종다양한 인생의 고민에 지성과 유머가 넘치는 책 처방전을 건네다
2011년 9월, 3,000여 권의 책을 수집해 안방을 서재로 만든 한 장서가가 각종 매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집요한 탐독과 수집에 대한 열정이 뭇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절판본 이야기를 다룬 그의 첫 책 초판이 며칠 만에 동이 나기에 이른다. 『이런 고민, 이런 책』의 저자 박균호 이야기다.
어느덧 중년의 한가운데에 이른 저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마음이 울컥해지는 사연을 만난다. 어느 장서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자녀가 서재의 책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하곤 아버지의 것이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연이다. 이에 박균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았으면 하는 책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수천 권의 책 중에서 37권을 추렸다.
기준은 간단하다. ‘재미와 쓸모’.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지혜의 빛을 비추어줄 수 있는 책들이다. 주로 고전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 문학과 실용서, 잡지도 간과하지 않았다. 또한 친절하게 언제 그 책을 읽으면 좋을지 글 제목으로 안내한다. 어른이 돼서도 반복되는 다양한 고민과 고비 앞에서 갸웃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이들에게 특유의 유머를 담아 서른일곱 가지 처방전을 건넨다.
◈ 부조금 액수가 고민될 땐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_ 인생의 실제적인 고민과 책 속의 지혜를 연결하다
책 속에 지식과 지혜가 있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그 지식과 지혜가 언제 우리 인생과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문학, 그중에서도 고전 문학은 더욱 그렇다. 독서가 유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성질 고약한 직장 상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때, 부조금을 얼마나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 타인에게 부탁하는 일이 어려워서 혼자 전전긍긍할 때 책이 정말 지혜로운 조언을 건네줄까? 박균호는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한다. 특히 그가 자신의 서재에 있는 수천 권에서 고른 37권이 그렇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고민은 실로 다종다양하다. 직장 스트레스부터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결정을 내리고 마음을 다잡는 모든 과정이 평범한 개인의 삶을 이룬다. 이 책은 그 순간의 고민을 37가지로 나누어 책 처방전을 건넨다. 이런 식이다.
〇 부조금을 5만 원 해야 할까, 10만 원 해야 할까?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 주인공 잔느가 하는 말을 읽어봐. 얼마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거야.
〇 나도 소신을 갖고 살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 살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어봐. 제인의 인생 자체가 소신이란 게 무엇인지 말해줄 거야.
〇 요즘 사는 일이 요즘 버거워.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읽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어.
〇 하소연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이 따로 있을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힌트가 있어. 러시아에서도 민간신앙이 힘을 잃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와 같아.
〇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같이 『노르웨이의 숲』을 읽자. 등장인물 태반이 세상을 떠나거든.
◈ 지성과 유머가 넘치는 책 처방전과 ‘반려 책’에 대한 유언
_ 서른일곱 권의 책과 작가를 둘러싼 풍성한 이야기
반려동물, 반려식물과 같은 말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책을 반려라고 칭하는 이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 안에 무궁무진한 세계가 담겼다 한들 무생물인 책이 평생 나와 함께할 짝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박균호는 그런 드문 이 중 하나다. “책은 반려라는 말과 참 잘 어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름지고 생기가 줄어들며 탄력이 없어지기도 하는 책들”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가족들이 식구처럼 대해주면 좋겠다는 게 저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물성, 그리고 그 책을 손에 넣기 전후에 얽힌 일화까지도 그에게 충분히 반려의 조건이 된다. 그리하여, 마치 “딸아이를 붙잡고 서재에 종일 머물며 내가 사랑하고 각별하게 여긴 책들을 소개해”주는 마음으로 『이런 고민, 이런 책』을 썼다. 어쩌면 이 책은 집요하게 수집해 일궈온 자신의 서재에 대한 37가지 유언과도 같다.
유언이라고 해서 숙연한 글이 아니다. 되레 유쾌하다. 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해학과 위트가 시종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그 책을 손에 넣게 된 경위, 읽기 전후에 있었던 일화는 책이 한 개인의 생활과 어떻게 면면이 맞닿는지 보여준다. 또한 “내일 지구가 망해도 이 책만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만큼 37권의 책과 그 작가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가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를 채워준다. 그 글이 쓰인 시대의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부터 해당 작가의 개인사, 출판과 관련한 비화 등이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읽고자 하는 의지를 자극하고,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재독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다.
가령, 이 책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들어가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의 아내는 동생과 함께 일본 우쓰야마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저자에게 여행 경로를 짜달라고 요청한다. 저자는 세상 귀찮다는 듯,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우쓰야마 대해 알아본다. 그러다 그곳이 일본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도련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며, 소세키가 실제로 제국대학 졸업 후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리다 그 시골 지역의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소한 발견을 시작으로 저자는 소세키에 대한 작가론과 작품론을 펼쳐가고,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무슨 일이든 간에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지혜를 도출해낸다.
세상의 고민이 이 책에서 말하는 37가지로 모두 정리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 37종 외에도 세상엔 좋은 책이 많다. 다만, 열과 성을 다해 모은 수천 권의 책 가운데에 다시 한 번 고르고 고른 37권의 책을 누구나 한 번쯤 만나게 되는 실제적인 고민과 연결하여 풀어낸 이 책을 읽고 독자도 자신만의 반려 책, 내가 죽음을 맞은 뒤에도 세상에 남아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간직되었으면 하는 책을 추려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 책들이 이후의 “내 삶을 단단하게 받쳐주며, 언제까지고 곁을 지켜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