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사각사각……
온몸 가득 채우는 상상의 즐거움
2009년 『서정시학』 시 부문으로 등단하고, 2017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권기덕 시인이 두 번째 동시집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를 선보인다. 첫 번째 동시집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중 「스펀지 교실」)은 202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 『국어 4-2 ㉮』에 수록되어 더 많은 독자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전할 것이다. 신작 동시집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에서 권기덕 시인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본인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시상을 펼쳐 보인다. 특히 표제작인 「사과의 말」은 실험적 형식과 서정성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는 수작이다.
사실 내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요/사각사각 사각사각/소리 들리나요?(…)모서리 때문에 아프지 않냐고요?/각진 마음이 생기지 않았냐고요?//글쎄요, 내 둥긂 속에 사각형들을/잘 버무렸나 보죠/친구들은 내가/달콤한 행복을 준다며 좋아했어요//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바로 사과의 말이니까요//원고지 빈칸처럼/사각형으로 온몸을 채워 볼까요?//나는 망설임 없이/누군가의/붉고 붉은 문장이 될 거예요 -「사과의 말」 부분
「사과의 말」은 ‘사각’이라는 시각적 표현과 ‘사각사각’이라는 청각적 표현이 반복되어 리듬을 만들고, 언어유희를 통해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만들어 낸다. 마음을 드러내는 일에 서툰 어린이의 언어는 원고지 빈칸이 하나씩 채워지는 것처럼, 점차 또렷한 모양을 갖춰 간다. “누군가의 붉고 붉은 문장이 될 거예요”라는 마지막 구절은 어린이에게 동시를 통해 새로운 상상의 장을 열어 주겠다는 시인의 다짐으로도 들린다.
다시 태어나는 일상의 감각,
풍성한 형식과 표현이 선사하는 즐거움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는 단연 유쾌한 상상의 힘이 돋보이는 동시집이다. 김준현 평론가는 시인이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끝까지 힘차게 밀어붙여’ 결국 안전한 놀이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킨다고 평한다. 환상을 통해 자신만의 시공간을 확보한 작품 속 어린이들은 각각 다른 색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수업 시간에 창밖으로 지나가는 괴물이나 공룡, 거인 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다 지나갔어」, 콜라처럼 보이는 밤바다에서 마음껏 상상을 펼치는 「콜라 바다」, 초록 우산 아래서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변한 모습을 그려 보는 「초록 비」, 해수욕장에서 가지고 논 돌고래 튜브를 다시 집으로 초대하는 「돌고래 초대하기」 등 시편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상황을 상쾌하게 뒤틀어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게 일상 속 흔한 순간들은 제각기 다른 촉감과 향기를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에는 동시의 형식과 표현을 새롭게 탐색하는 시편도 여럿 존재한다. 각각의 시편들은 시인이 성인 시에서 보여 준 예리한 언어 감각이나 실험 정신을 꾸준히 이어 가면서도, 형식적으로도 풍성해 읽는 재미가 있다. 동시집에서 자주 살펴보기 어려운 산문시 형태의 작품들(「숟가락 교실」 「로봇 뱀」 「마구간」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 「날벌레에게」 「빙글빙글 타이어」)은 시인의 치열한 실험 정신을 보여 주며, 블록 놀이를 하듯 말을 자유롭게 쌓아 보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보는 경험(「훌라후프」 「백미러」 「인도」 「다세대 주택」 「칸 공책 세상」)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떠들썩한 놀이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따스한 태도와 다채로운 서정이 빛나는 동시집
초등 교사이기도 한 권기덕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생한 언어와 감정을 가까이서 듣고 본다. 그렇기에 시인의 동시집에는 어린이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이 그려 내는 어린이는 삶의 순간을 강렬하게 목격하고 포착한다. “빨간 색연필을 쥔 손”을 빨간 새로 여기고 바라보는 「빨간 새」, 혼자 가상 현실 속에서 수달과 시간을 보내는 「VR 친구 수달」 등 어린이의 일상 속 여러 순간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미덥다.
권기덕의 시 세계를 논할 때 서정 또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시인은 어린이 화자가 품은 다채로운 감정을 정확하게 그린다. “너만 떠올리면 자꾸 빈칸만”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빈칸의 얼굴」, “전학 간 내 친구 방수민을 일기장 속에서 불러” 보는 「방수민」, 차도에 쓰러진 야생 동물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라고 말하는 「꼬리의 얼굴」 등 여러 시편에서 등장하는 담담하게 전해지는 고백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처럼 권기덕 시인은 상상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고, 일상을 풍성하게 채워 나가도록 이끈다. 점점 줄어드는 상상의 시간 속에서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는 어린이에게 언어의 아름다움과 상상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동시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