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그 안에 피어나는 서정”
2016년 첫 시집 『장항읍』으로 섬세한 시 세계를 선보였던 임승민 시인이, 긴 침묵 끝에 두 번째 시집 『어둠과 조우하는 서정처럼』으로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첫 시집이 젊은 날의 방황과 장년기의 고뇌를 담아냈다면, 이번 시집은 그 시간을 지나온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요한 해탈의 경지를 펼쳐 보인다.
임승민의 시에는 오랜 시간 동안의 슬픔과 아픔을 이겨낸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실한 위로가 담겨 있다. 시인은 단순히 정서의 세련된 표현이나 문장의 감각적 유려함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향한 깊은 철학적 탐색으로 나아간다.
시인은 ‘어둠’을 두려움이나 회피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끝내 ‘서정’이라는 언어로 끌어안는다. ‘조우’라는 제목 속 단어처럼, 이 시집은 어둠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안에서 새로운 감각과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적 실천이다.
시집 전반을 아우르는 주요 키워드는 ‘연결’과 ‘비늘’이다. 「오리온자리」, 「해감」, 「지느러미」, 「윤곽」 등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 두 단어는, 시인이 세상과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비늘’은 상처의 표면이자 보호막이며, 삶을 살아낸 흔적이고, ‘연결’은 단절된 세계를 이어나가려는 시인의 집요한 시선이다.
『어둠과 조우하는 서정처럼』은 쉽게 읽히는 서사적 시와, 독자의 인식 회로를 재구성하게 만드는 실험적인 이미지 중심의 시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익숙한 일상의 장면 속에서도 독자에게 감각의 전복을 일으키는 언어, 때로는 손석희 앵커를 무협지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상상력의 비약, 또 한 마디 말 대신 ‘비늘 한 줌’을 뿌리는 침묵의 이미지까지-임승민의 시는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의 진폭을 선사한다.
이 시집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현대적 서정성’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데 있다. 전통 서정시의 결을 품되,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실과 가상, 감성과 냉소를 넘나들며 감각을 확장한다. 「나의 우아한 커피 빈」, 「여덟 시의 무사들」 같은 시편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단절과 권태를 오히려 상상과 창조의 동력으로 삼는 반전의 미학이 펼쳐진다.
『어둠과 조우하는 서정처럼』은 그 어떤 강요도 없이 마음속 은밀한 층위를 건드리는 언어로, 잊고 있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 낸다. 어둠과 불안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은 잔잔하지만 확실한 울림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