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대신 잠, 삶 대신 잠, 죽음 대신 잠
모든 순간을 회피하며 살던 잠보에게 찾아온 사랑
“누구라도 몽롱하게 사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잠보의 사랑』에서는 ‘일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사건, 사랑’, 로맨스×비일상을 키워드로 하여 행복 대신 잠, 삶 대신 잠, 죽음 대신 잠을 선택하면서 모든 순간을 회피하며 살던 스무 살 잠보, ‘나’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펼쳐 보인다. 아버지의 기묘한 예민함을 물려받은 ‘나’는 코로나 이후 어머니와 세 누나가 집에서 온종일 시끌벅적하게 지내기 시작한 뒤로 잠보로서의 재능을 상실했다. 잠을 잘 수 없게 된 ‘나’는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더더욱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순수하게 잠을 자기 위해서 독립을 선언한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눕고 싶은데 계속 일으키는 가족들을 죽일까 아니면 내가 베란다에서 뛰어내릴까 고민하는 가운데 등장한 어머니의 구옥은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살릴 유일한 피난처였다.
처음 집에 들어와 바닥에 눕자 눈물이 흘렀다.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면 곡선이 바닥을 치고 상승하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과수면의 시기가 오고 있었다. 그렇게 잠의 범람을 맞아 편안히 추락하려는데 위층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27쪽)
어머니가 소유한 다른 지역의 구옥 1층에 살게 된 ‘나’가 드디어 잠을 청하려던 그때, 윗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예민함이 극에 달하면 다리가 꺾이듯 잠이 들 수 있는 ‘나’는 상황을 극한으로 몰기 위해 윗집으로 곧장 가서 항의하지 않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견뎌낸다. 마침내 당도한 그날, ‘나’는 윗집 사람에게 쏟아낼 말을 중얼거리며 윗집으로 향한다. ‘나’가 뱉어낸 모든 말을 들은 윗집 사람, ‘선숙이 누나’는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듯 묻는다. “개 키워본 적 없죠?”(35쪽) 자기 자신을 방치하며 사람답게 살아본 적 없기에 개를 키워봤을 리 만무한 ‘나’는 누나의 다음 말을 듣고 벙찐다. “모든 개와 인간이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죠. 안 된 채로도 살아야 하고요.”(39쪽) 한 번도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달라지고 싶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누나의 “헤픈 관용”(40쪽)과 “과격한 과단”(같은 쪽) 앞에서 모종의 설렘을 느낀다. 오직 잠을 훼방 놓는 존재였던 개와 누나는 잠보의 굴레에서 ‘나’를 구할 수 있을까?
누구도 반려해본 적 없는 예민한 잠보와
유기 불안을 앓는 개를 키우는 윗집 누나의 연애
개가 나에게 다가와 몸을 비볐다. 내가 자기의 두 번째 반려 인간이 될 것임을 눈치채서인지 아니면 흥분의 냄새를 맡아서인지 교미 동작을 흉내 냈다. 그날 모처럼 나 자신이 싫지 않았는데 내가 한 인간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의 복잡성에 꼴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재능처럼 느껴졌다. 다시 보니 누나는 삼십대처럼 보였다. (41쪽)
『잠보의 사랑』은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고 누구도 반려해본 적 없는 예민함 잠보와 분리 불안을 넘어 유기 불안을 앓는 개를 키우며 자유분방하되 무책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선숙이 누나의 연애담을 담고 있다. 선숙이 누나의 “내면의 복잡성”(41쪽), 즉 소중한 존재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코 통제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을 엿본 회피형의 대표 주자 ‘나’는 누나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잠보의 속성을 바꿀 수 있을지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후일담은 「작업 일기 : 어떻게 소설의 여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일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달달북다’는 12명의 젊은 작가가 로맨스×칙릿(김화진, 장진영, 한정현), 로맨스×퀴어(이희주, 이선진, 김지연), 로맨스×하이틴(예소연, 백온유, 함윤이), 로맨스×비일상(이유리, 권혜영, 이미상)의 테마를 경유해 각별한 로맨스 서사를 선사한다. 독자들은 오늘날 각기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