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그 무명의 청춘이 던진 실존의 물음 - ‘어떻게 살 것인가’
『한영현 평전』은 1983년, 스물한 살의 청년이 군부독재의 비정한 국가폭력에 의해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한 청년의 죽음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평전이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폭압의 시대를 살아간 한 인간의 실존적 고뇌, 행동 그리고 그 속에서 움튼 연대와 저항의 기억이다.
한영현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사상 전향 강요와 프락치 공작의 희생자였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은 대학가의 민주화운동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수많은 학생을 징집이라는 이름으로 연행해 군대 내에서 고문과 회유를 자행했다. 그 가운데 한양대학교 81학번 청년이었던 한영현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폭력적인 징집과 반복된 강압 수사, 동료를 밀고하라는 협박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이 책은 당시 국가 폭력의 정교한 메커니즘, 즉 안기부와 보안사, 경찰 정보과, 대학 학생처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어떻게 학생들을 감시하고 탄압했는지를 촘촘히 보여준다. 또 한양대학교의 운동권 서클 활동, 탈춤과 연합 활동(연탈), 노동야학 참여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진 청년들의 실천이 당시의 암울한 정세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한영현 평전』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가시화되었던 비극의 구조를 드러내는 하나의 정치적 탐사이며, 오늘날 우리가 어떤 역사를 되짚고, 어떤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윤리적 호소다. 평전의 서사는 정제되지 않은 슬픔, 묵직한 분노, 회한으로 이어지지만, 결코 신파에 빠지지 않는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진실을 묻고, 아직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국가폭력의 책임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기억’의 정치학을 실천한다. 1980년대 초 민주화운동은 흔히 1987년의 전초전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한영현 평전』은 1983년 이전, 이미 수많은 청년이 구속과 고문, 사망으로 내몰렸다는 사실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체제에 의해 강요된 사회적 타살이었다.
또한 이 책은 그를 기억하고자 했던 동료, 선후배, 가족, 시민들의 목소리와 기억을 통해 당대의 공기와 삶의 결을 생생히 복원한다. 가혹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며, 끝내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증언록이기도 하다.
2025년 현재,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국가폭력과 권력의 일방성을 마주하고 있다. 『한영현 평전』은 그저 과거의 사건을 되풀이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묻고,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되새기는 책이다.
한영현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선택하고 지향한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과거에만 속한 것이 아니며, 매 순간 갱신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을 되살리는 작업이며, 독자 스스로 삶의 자세를 되묻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그리고 한 청년의 죽음. 『한영현 평전』은 그 모든 어둠의 기록 위에 ‘기억하라’는 불빛을 남긴다. 시대를 초월해 독자의 가슴에 영현의 목소리를 되살려주는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진실의 기록’이다.
☐ 주인공 소개
한영현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에 맞서 싸웠다.
한양대학교 공대 재학 중 탈춤반 활동을 통해 민중예술과 사회문제에 눈뜨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강제징집되어 군 복무 중 가혹한 녹화사업에 노출되었다.
사상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 가운데 극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83년 7월 2일 산화했다.
그의 죽음은 국가폭력의 실상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으며, 이후 진상규명과 추모운동의 불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