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인가?
현대인은 각자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심리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심리학과 MBTI에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다. 불안, 정체성, 관계, 트라우마 등의 주제는 이제 일상에 자연히 녹아들어, 심리학은 삶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MBTI가 대중에게 친숙해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원형인 융 심리학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틈을 메우고자 융이 사용한 개념어를 중점적으로 선별해 융의 전집에 등장하는 맥락 속에서 용어를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구성했다. MBTI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융의 문장을 일부 소개한다.
기능 유형은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이라 부를 수 있는데, 기본 기능의 특질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즉 합리적인 유형과 비합리적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고형과 감정형은 전자에 속하고 감각형과 직관형은 후자에 속한다. 이는 리비도의 움직임에 대한 지배적인 경향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더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내향형과 외향형이다.
-255쪽
그는 비밀이 없다. 타인들과 공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런데도 말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생긴다면 그 내용을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낙관주의와 긍정주의의 전진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피한다. 생각하고 의도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든, 확신과 따뜻함으로 표현된다.
-89쪽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 사람은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낀다. 사람이 많을수록 저항이 커진다. 이 사람은 열정적인 모임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이 하는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기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정상적인 조건에 서 이 사람은 비관적이며 걱정에 휩싸이는데, 세상과 인간은 그에게 조금도 선하지 않으며 그를 짓밟기 때문이다. (…)
-132쪽
사전이지만 ‘지도’다
원전에서 뽑은 개념의 지도
이 책은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편찬한 볼링겐 시리즈 중 융의 전집 20권을 기반으로 개념어를 정리했다. 각 항목에는 해당 개념이 등장하는 융의 원문을 직접 인용했다. 해당 부분의 출처는 미주에 모두 실었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 전집에 실린 글 제목을 번역해 해당 부분을 찾기 쉽도록 안내했다. 또한 출처에 실린 책은 참고문헌 목록으로 정리해 융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또한 번역어가 주는 왜곡을 피하고자 용어를 싣는 순서 역시 원전을 따라 ‘가나다’ 순이 아닌 알파벳 순으로 실었다. 예를 들어 ‘Adaption(적응)’은 다음과 같은 융의 문장이 실렸다.
[개성화를] 목적으로 삼기 전에 최소로 필요한 집단 규범에 적응하는 교육적 목표가 먼저 성취되어야 한다. 식물이 고유한 본성을 만개하려면, 먼저 씨앗이 파종된 토양에서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의 영속적 흐름은 거듭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다. 적응은 결코 한 번에, 그리고 전부 달성되지는 않는다.
-22쪽
이렇듯 개념어를 설명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설명이 아닌 융의 ‘진짜 목소리’를 접할 수 있어 융의 사유 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신화와 꿈의 언어로 융의 목소리를 담다
이 책을 옮긴 고혜경은 신화학자이자 꿈 분석가로, 강단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이번 번역작업을 통해 융이 다루는 각 개념어의 맥락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거쳤다. 고혜경은 융을 ‘진정한 영웅’이라 평가한다. “아무도 탐색하지 않은 세상을 먼저 탐험하고 그 세계를 탐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융은 중년의 위기 상황에서 눈을 내면으로 돌려 무려 16년간의 고독하고 지난한 실험을 자기 자신에게 감행함으로써 인간의 심층을 탐구했다. 융은 현대인이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의식과 단절했기 때문이라 진단하며, 무의식을 탐색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담아 현대인을 위한 ‘영혼의 지도’를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