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남아 있어요
우리 기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고 빛을 잃어 가지요. 하지만 잊고 있던 것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함께 거닐던 길을 무심코 지날 때, 같이 즐겨 먹던 음식을 마주했을 때처럼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책고래마을 신간 《거북이》는 ‘나’에게 더없이 특별했던 거북이와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와 할아버지와 거북이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지요. 거북이의 모습은 모두 기억이 나는데 말이에요. 할아버지를 떠올리려고 할수록 거북이의 모습만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거북이의 피부, 거북이의 등껍질, 자그마한 거북이, 커다란 거북이, 목을 쭉 내민 거북이….
사실 ‘나’는 거북이를 잊을 수가 없어요. 매일 ‘눈을 크게 뜨고’ 거북이를 지켜보았거든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거북이 냄새를 맡기도 했어요. 그건 따스한 햇살 냄새, 귀뚜라미랑 달팽이 냄새, 비 내린 후 흙에서 풍기는 냄새였지요.
거북이와의 기억을 가만가만 쫓다 보니 비로소 할아버지가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거북이랑 똑 닮은 눈을 가졌고, 거북이처럼 주름이 있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였어요. 그리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하고 아늑한 곳에서 오래오래 잠을 자고 있지요.
앙헬라 쿠아르타스와 디파초가 함께 작업한 《거북이》는 2023년 쿠아트로가토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쿠아트로가토스 상은 미국의 쿠아트로가토스 재단이 매년 스페인어권 아동청소년 문학 작품 중에서 뛰어난 책에 수여하는 상이에요. 《세이바》로 스페인 어린이 문학상인 바르코 데 바포르 상 최종 후보에 오른 앙헬라 쿠아르타스는 간결하고 시적인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한편 그림책 《무슨 일이 있더라도》로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난 디파초는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그림으로 눈길을 끌어요. 같은 듯 다른 거북이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 화면에 옮겼지요.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스치듯 가볍게 지나가는 만남도 있고,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머무르는 만남도 있어요. 《거북이》는 내 마음 깊숙이 자국을 남긴 사람들, 잊고 있다가도 문득 떠올라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존재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