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특유의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한 철학적 성찰,
그리고 번역이라는 망명 속에 살아가는 작가의 고뇌가 담긴 101개의 말
밀란 쿤데라는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해 2023년 사망할 때까지 조국인 체코로 돌아가지 않았다. 체코어로 쓴 작품들이 조국에서 판매 금지된 후 『느림』(1993년)부터 프랑스어로 작품을 집필한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전작이 체코어로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돌아가지 못한/않은 조국 체코와 프랑스 사이에서 그는 평생 물리적 ㆍ 언어적 디아스포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런 쿤데라에게 정확한 번역은 매우 중요했고, 그에게 ‘말’이란 끊임없는 의심과 점검의 대상이었다.
「89개의 말」은 이 같은 번역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쿤데라가 그토록 번역에 예민하고 철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많은 나라에서 번역 저본으로 선택된 프랑스어판이 엉망으로 번역된 데다 이후 프랑수아 케렐이라는 번역가와 파트너를 이루어 작업했음에도 체코어로 집필한 작품이 결국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 독자들에게 가 닿을 수 없었던 제한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쿤데라는 “미래의 프랑스어 판본을 메아리처럼 들으며” 집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작가의 고뇌에 피에르 노라는 제안한다.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 보면 어떻겠나? 자네가 중요시하는 말들, 자네를 골치 아프게 하는 말들, 자네가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 작가는 즉시 이 생각에 매료되었고, 「89개의 말」은 그렇게 탄생한 글이다. 이 소사전은 ‘절대(Absolu)’에서 시작해 ‘저속함(Vulgarité)’까지 101개의 단어가 알파벳 순서로 펼쳐진다. 그 안에는 쿤데라 특유의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한 철학적 성찰과 함께 번역이라는 망명 속에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고뇌도 함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엄정하게 선택한 단어가 번역을 거치며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변형되어 의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일화나, 그가 소설이라는 예술에 대해 품고 있는 철학이다. 첫 항목인 ‘절대’에서 그는 “소설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에 손을 대는 것인 만큼, 형이상학적인 말들(절대, 본질, 존재 등)은 소설에 인용될 권리가 있다.”고 못 박으며 시작한다. 이어서 ‘정의(Définition)’ 항목에서는 “모호성 속으로 빠져들고 싶지 않다면, 내가 그 말들을 극도로 정확하게 선택해야 함은 물론 그것들을 정의하고 또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Être)’ 항목에서 등장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제목에 대해 그의 주변에서 보였다는 반응도 흥미롭다. 그는 제목의 ‘존재’라는 단어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말하며, ‘존재’의 대척점에 있는 ‘죽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유명한 『햄릿』의 대사(“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작가가 기쁨, 관능, 쾌락이라고 쓴 곳마다 ‘오르가슴’으로 바뀌어 있는 미국 번역판에 관한 에피소드(‘오르가슴[Orgasme]’)와 ‘도덕적 상황’에 관한 ‘미학적 판단’이라는 쿤데라의 날카로움을 드러내는 항목(‘추함[Laid]’)은 웃음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프랑스어에서 국외자일 수밖에 없는 그가 모국어와 프랑스어의 간극에서 느낀 낯선 아름다움과 때로는 익살스럽기까지 한 안타까움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예컨대 B 항목의 ‘Bander(꼴리다)’에서 그는 『우스운 사랑들』에서 쓴 문장에서 실은 ‘꼴렸다’는 말을 썼어야 했는데 체코어에 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 생각해 내지 못한 일화를 이야기한다. 뒤늦게 적확한 단어를 찾은 쿤데라는 “내 모국어가 꼴릴 줄도 모르다니!” 하며 한탄한다. C 항목의 ‘Chez-soi(내 집)’에서는 정치적, 국가적 버전으로서의 ‘조국’과 ‘집’으로서의 고향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 대해 성찰하고, ‘책(Livre)’ 항목에서는 ‘내 책’과 ‘내가 사는 마을’이라는 프랑스어 사이에 존재하는 음과 박자에서 독특한 발견을 하는 식이다.
그가 각별한 애정을 품은 중부 유럽과 유럽 작가들에 대한 항목들, 그중 프라하의 상징과도 같은 작가 카프카를 언급한 항목들은 쿤데라라는 작가와 겹쳐 보게 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카프카는 비참하게 덫에 걸린 인간의 상황을 그렸다. 지난날, 카프카 전문가들은 카프카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아닌지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아니, 희망은 없다. 다른 게 있다. 카프카는 삶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조차도, 기이한, 검은 아름다움으로 발견한다. 아름다움, 그것은 더는 희망이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승리다.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이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 발하는 돌연한 빛이다. 위대한 소설들이 발하는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늘 인간의 실존을 망각하기에, 소설가들이 이룬 그 발견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부단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아름다움[Beauté]’ 항목)
천년 역사의 마지막 메아리를 남기고
‘전체주의의 밤’에 파묻힌 문화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고찰
이어 실린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詩)」는 쿤데라의 프랑스 망명 초기, 즉 렌 대학교에서 ‘카프카와 중앙 유럽의 문학’을 강의하던 1980년에 피에르 노라의 요청으로 《데바》 지에 발표한 글로, 점점 멀어져 가는 고국을 향한 애틋함과 절망이 깃들어 있다. 수년 전 떠나온 조국과 프라하에 대한 쿤데라의 향수, 소련 침공으로 “전체주의의 밤” 속에 파묻혀 버린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물론, 프라하의 위대한 문화에 대한 그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큰 울림을 주는 글이다.
프라하는 서유럽 문화의 오래된 중심지이자, 점점 동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난 도시다. 라인강 동쪽 최초의 대학 도시이자 종교 개혁의 요람이자 바로크의 수도였고, 1968년에는 서구적 사회주의 실험의 무대였던 곳. 그러나 쿤데라는 이 도시가 체코어라는 언어 장벽과 반복된 정치적 침략 속에서 아틀란티스처럼 멀고도 낯선 곳이 되었다고 말한다.
체코 문화는 오랫동안 서구에서 간접적으로만 이해되었다.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카프카, 네즈발, 무카르조프스키 등 체코 예술가와 지식인 들의 작업은 그들이 속한 언어, 환경, 사유의 맥락 없이 해석되었고, 체코어는 유럽의 불투명한 유리 벽이었다. 그는 덴마크, 카탈루냐, 폴란드, 체코 같은 소국들이 대국의 문화를 모방한다고 여기는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 소국은 서로 다른 시각과 감수성을 지닌 또 다른 유럽을 형성한다.
프라하의 문화사는 이성보다 환상과 불합리의 계보에 속한다. 황제 루돌프 2세 궁정의 비학과 환상 예술, 바로크 시대의 광기, 초현실주의 시인 네즈발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는 늘 비합리의 정서에 민감했다. 이런 전통은 카프카와 하세크, 차페크 같은 작가들을 낳았다. 그들은 유럽이 진보와 이념에 도취되던 1차 세계 대전 후 이미 그 이면의 위협과 병리성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 『소송』의 요제프 K.와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의 주인공 슈베이크는 전체주의라는 기계 앞에 선 인간의 두 가지 태도를 상징한다. 쿤데라는 이들이 30년 후 프라하의 현실을 예견했다고 본다.
한편 프라하는 세기 초부터 현대 예술의 모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공간이었다. 쿤데라는 유명한 카프카 전기를 집필한 클라우스 바겐바흐를 비판한다. 바겐바흐가 프라하를 세상과 동떨어진 곳, 고립된 한 지방 도시로 파악함으로써 카프카를 오해하게끔 했다는 것이다. 프라하는 또한 구조주의의 요람이자 최초의 대도시이기도 했다. 쿤데라는 프라하에서 꽃핀 구조주의와 체코 구조주의자들의 특성, 그것이 인간과 예술에 대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성찰한다. 또한 체코 초현실주의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서구의 합리주의에 반하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달리 체코의 초현실주의는 프라하 예술 전통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전통에서 탄생한 네즈발의 시는 특히 “구체성에 대한 도취”를 통해 독특한 미학을 드러낸다.
이런 흐름은 음악에서도 이어진다. 야나체크는 말러와 쇤베르크 이후 음악 낭만주의의 한계에 맞서, 삶과 심리에 밀착된 음악을 시도했다. 그런데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생애 말년에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 「죽음의 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곡가의 삶과 전혀 무관한 어두운 비전으로 가득 찬 그 작품을 창작한 이유를 묻는다. 그로서는 정답을 찾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그는 다만 카프카의 『소송』, 하셰크의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와 함께 「죽음의 집」이 미래의 지옥을 그린 20세기 가장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이라고 꼽는다. 이 작품들을 통해 “이미 모든 것이 말해졌고, 이후의 역사는 그 상상을 따라왔을 뿐”이라면서.
1948년의 쿠데타와 1968년의 소련 침공은 프라하를 동유럽의 위성국으로 전락시켰고, 천년의 문화는 그렇게 붕괴했다. 카프카가 위협적인 이유는 그가 반공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러시아적 세계관과 결코 섞일 수 없는 낯선 문화의 구현자이기 때문이다. 쿤데라의 결론은 비극적이다. 프라하에서 사라진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하나의 위대한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