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은 남장로교 실행위의 해외 선교 정책을 서술한다. 이어 군산선교부의 복음 전도 선교를 처음부터 철수 시기까지 다룬다. 이는 군산선교부의 설립 이전의 서울 도착과 생활부터 좌충우돌의 거점도시 탐방과 선교 활동, 군산선교부 개설 모색과 설립, 성장과 침체기 그리고 1940년 선교사들의 미국 철수까지를 이야기한다.
2장은 1892~1903년 시기의 복음 전도 활동을 다룬다. 선교사들이 서울에 거주하면서 한국어 공부와 선교 준비를 하고, 군산선교부 건설 시기까지 서술했다. 여기에는 군산선교부 개설과 선교 초기 역사를 포함한다.
3장은 성장기(1904~1920)의 군산 구암(궁말) 중심의 복음 전도를 다룬다. 이 시기에 동서남북의 지역을 셋으로 구분하여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하였다. 복음 전도를 행한 선교사로 불, 해리슨, 얼, 멕어첸 등이 성경 교육을 통해 한국인들을 양성하여 목사와 장로 등 지도자를 육성했다. 이 시기 독신 여성 선교사 다이사트와 두퓌가 활동하였다.
4장은 왕성기(1921~1937)의 복음 전도를 다룬다. 이 시기에 교회 수와 교인들이 증가하였고 주일학교 운동이 활성화됐다. 특히 이 시기에 부인조력회 운동이 호남 지역에서 일어나 여성들이 복음 전도에 참여하였고 여성들에 대한 사회 계몽을 실시하였다. 또한 전도부인 양성학교가 전주와 광주에 각각 설립되었고, 군산에서는 독신 여성 선교사 두퓌와 그리인이 주로 여성 일꾼들을 교육하였다. 이 시기에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 문제가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5장은 쇠퇴기(1937~1940)의 군산 선교를 다룬다. 한국선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기독교 교육을 중단하였다. 급기야 교회에서도 복음 전도 문제가 터지고 일제가 개입하면서 한국선교회(군산선교부)와 한국장로교회(전북노회)가 갈등하고 단절되었다. 이 시기 선교사들은 안식년을 떠나거나 성경 공부에 집중하였다. 1940년 11월에는 군산선교부의 모든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하였다.
6장은 군산선교부의 의료선교 역사를 간략하게 논의하였다. 드루, 오긍선, 패터슨 의사 선교사와 서서평 간호 선교사에 대한 연구들은 최소한에서 이들을 다루었다. 특히 여기에서 선교병원을 질병 치료공동체로 이해하고 질병과 치료 과정을 부분적으로 다룬 것도 의미가 있다.
7장은 군산선교부의 기독교 교육 선교에 대하여 간결하게 기본적인 사항만을 정리했다. 한정된 재원과 인력 문제 등으로 한국선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중심학교 유치 경쟁이 있었는데, 본 필자는 이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하였다.
제4부에서는 군산선교부를 이끈 인물 4인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다.
8장은 리니 데이비스 여성 선교사를 연구하였는데. 리니는 가늘게 오래 살기보다는 혼신의 섬김과 나눔을 행하면서 굵고 짧게 삶을 살았다. 남장 선교사로 한국에 첫 입국자였던 리니는 병든 한국인들을 심방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감염되어 순직한 첫 선교사였다.
9장은 남장이 한국에서 이룬 의료선교적 업적 중의 하나로 오긍선 박사를 교육시켜 세브란스 의전의 제2대 교장으로 활동하도록 지원하였다는 사실을 논하였다.
10장에서 다룬 페터슨 의사 선교사는 당시 군산선교부의 의료선교 시술 능력을 한국에 널리 알린 첫 의료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병원 자립을 강조했다. 스프루라는 한국 토착병에 걸려 안식년을 떠났으나 고생하다가 미국에서 순직하였다.
11장은 초기 쉐핑(서서평)의 간호사 활동을 분석했다. 서서평은 간호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였지만, 성경 교사와 성경학교 교장으로, 부인조력회(여전도회) 조직과 연합활동가로, 조선간호부회 창설자로 유명하다. 더 나아가 그녀는 당시 미국 이민자들을 교육하여 이들을 미국 시민으로 정착시키는 적응 교육과정, 즉 사회 적응과 시민 양성 교육자 과정을 수료한 교육자였다. 이러한 교육적 배경을 가지고 서서평 선교사는 사회적 간호(District Nursing)를 주장했다. 그녀는 참으로 위대한 통전적 사회 선교 간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