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사적인 영역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 과제다
린 시걸은 《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맡겨져야 할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공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사회는 돌봄을 주로 여성에게 맡겨 왔으며, 돌봄을 가정 내부의 비가시적인 노동으로 취급해왔다. 이는 여성의 삶과 경력에 불균형한 부담을 주었고, 돌봄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걸은 돌봄이 단지 유아나 노인을 위한 한시적 지원이 아니라, 인간 생애 전반에 걸쳐 필수적인 행위이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기반임을 지적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늙고, 혼자가 될 수 있기에 돌봄은 ‘일부 사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다. 시걸은 돌봄이 지속 가능하려면 공공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하며, 보편적 복지, 의료 시스템, 돌봄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집단적 책임으로 다시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지 윤리적 요구를 넘어서,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 조건이다. 돌봄이 공적 자원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돌봄을 받는 이와 제공하는 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재구성한다
린 시걸은 《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에서 “돌봄의 정치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다시 구성할 열쇠라고 주장한다. 전통적 민주주의는 주로 투표, 법적 권리, 절차적 정당성에 집중해 왔지만, 시걸은 이러한 틀로는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실제 삶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 존재이며, 누구나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구조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는 돌봄을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 두고,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이를 떠넘긴 채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곧 돌봄의 위기를 초래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해체와 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한다. 시걸은 이를 “정서의 위기”로 해석하며, 돌봄을 배제한 사회는 공감, 신뢰, 연대 같은 민주주의의 감정적 토대마저 잃게 된다고 분석한다.
그녀는 돌봄을 공공의 가치로 재정립하고, 이를 제도와 정책의 중심에 둘 때 비로소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돌봄 중심의 정치학은 투표권 이상의 민주주의, 즉 누구나 돌봄을 받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돌봄 인프라 확충, 돌봄 노동의 재평가, 지역 공동체의 역할 강화 등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돌봄을 통해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정치학이다.
모두를 위한 상호의존의 사회로
“모두를 위한 상호의존의 사회”는 린 시걸이 《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에서 강조하는 핵심 이상이다. 시걸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며, 이는 일생 동안 요구되는 조건이다. 따라서 돌봄은 특정 계층이나 가족, 특히 여성에게 떠넘길 막중한 부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공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상호의존의 사회는 약자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부담’이나 ‘예외’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돌봄을 중심 가치로 삼아, 사회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선 복지 시스템, 의료와 교육, 노동 환경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팬데믹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고, 상호지원 네트워크와 자발적 돌봄 활동은 상호의존의 사회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걸은 이 같은 일시적 돌봄 실천이 지속 가능하려면, 돌봄이 국가와 사회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두를 위한 상호의존의 사회란,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개인주의적 이상을 넘어 연대와 책임을 중심에 두고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을 권리를 갖는 사회를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며, 민주주의의 미래다.